[8월 1주차] 안 느끼한 산문집, 성적을 부탁해 티처스 '가난을 팔아서 돈을 벌겠다'는 포부를 지닌, '욕을 잘하지만 착하다'고 셀프 소개하는 강이슬 작가님의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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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누군가에게도 내 행복이 스민다면 정말 좋겠다.
그러면 나는 확실히 오랫동안 아프거나 망하지 않을 것 같다.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살다보면, 꼭 닮고 싶은 사람을 가끔씩 마주하곤 합니다. 외형, 스펙 이런 것이 아닌 그 사람 자체를요. 같이 있으면 풍기는 분위기, 혹은 대화하면서 느껴지는 그 사람 본연의 색을 닮고 싶다는 생각이 가끔 듭니다. 저도 제 고유한 색이 있기에 그 사람의 색을 온전히 흡수할 수도 없고, 흡수한다 한들 그 색이 제게 와서는 원래의 파워를 발휘하지 못할 것임을 알지만서도요.
그 색의 원천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제 인생사에서는, 닮고 싶었던 사람들이 일론 머스크, 테일러 스위프트처럼 무언가를 이룬 어마무시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둘은 안 만나봐서 사실 모릅니다만..ㅎ) 별다를 것 없는 일상적인 일상을 보내는 평범한 주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저 일상사를 대하는 그 사람만의 시각만이 달랐을 뿐입니다. 관점이 그 사람 본연의 색을 만드는 것 같더라구요. 한물 갔지만 럭키비키라는 말이 꽤 유행했는데, 럭키비키가 긍정적인 면모로의 시각에 국한된 것이라면 이 색은 꼭 긍정이 아니더라도 부정을 견디는 중립의 시각, 쇠귀에 경 읽기 권법으로 만들어낸 의연한 시각 등 다양합니다. 시각이 사람의 색을 덧입히고, 그 색으로 만들어진 캐릭터, 그리고 그 캐릭터가 글로든, 말로든, 분위기로든 자신의 내면을 뿜어낼 때 상대방이 속절없이 매료되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저자, 강이슬 작가님의 색은 매력적입니다. '나는 졸라 짱이다. 가만 있어도 밟아대는 세상 탓이지 내 탓은 없다. 그럼에도 세상에는 아직 사랑이 있다. 스물여덟 나이를 먹고도 세상 물정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사과 한 알의 맛밖에 없지만, 우리 엄마는 같은 나이에 어린 딸내미를 데리고 의사 앞에서 머리를 또 수그리고 수그렸다. 아직 이런 씁쓸하고도 따뜻한 사랑이 남아 있다.' 이 시선으로 인생사를 바라보는 작가님 시선의 색은 명확합니다. 글로 인생사의 색을 풀어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이전에 자신만의 관점을 정립할 수 있다는 점이 부럽습니다. 이 책을 만나고 저는 서면으로 또 다른 닮고 싶은 사람 한 명이 생겼습니다. 서면으로 누군가를 매료시키는 일은 정말이지 다분히 경이로운 일입니다.
여기까지 나름 잔잔하게 글을 적어서, <안 느끼한 산문집>이라는 책 이름값도 못할 만큼 느끼한 인생 독백 에세이 아닌가, 싶을 수 있겠습니다. 딱, 책 날개에 달린 작가 이력을 읽어볼 때입니다.
'<SNL 코리아>, <인생술집>, <놀라운 토요일> 등 TV 프로그램에서 근면하게 일하며 소소하게 버는 방송 작가.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안 느끼한 산문집>으로 대상을 받고 출판 계약을 하며 난생처음 갑이 되었다. 술과 개와 밤을 좋아하고 욕을 잘하지만 착하다. 어제도 오늘도 가난했고 내일도 가난하겠지만 가난을 팔아 돈을 벌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가지고 있다.'
방송 작가셔서 그런가, 필체가 골때립니다. 읽다보면 눈물나다가도 미친듯이 웃어서 그런 제 모습이 좀.. 골때리게 느껴집니다. 약간 처음에는 오기도 있었습니다. 문체에서 각잡고 나, 웃겨요를 시전하니 웃참이라도 해볼까 싶었지만, 두줄 읽고 빵빵 터져버려서 수긍하기로 했습니다. 울다가 웃다가,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작가님의 캐릭터는 어떤 캐릭터일까요. 쉽게 비유하자면 <쌈 마이웨이>의 애라라고 하겠습니다. 작가님의 색과 꼭 비슷한 캐릭터로요. 아래 사진처럼 애교스러운 모습이 닮았다기 보다, 힘들 때나 아닐 때나 동만이 목에 암바를 한번 걸어버리고는 다시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 그런 모습이요. 애라라는 캐릭터는 모르셔도 이 대사는 다들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눈~ 예쁜 척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예쁘게 태어난 곤뎅. 구거를~ 남들이 막 녜쁜 척하는 거라고 구니까는~ 애라는 힘들어. 훙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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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도 캐릭터인데, 애라가 동만이한테 있는 이야기 없는 이야기 미주알고주알 다 하듯, 작가님 역시 시시콜콜한 일상 이야기를 정말 있는 그대로 그립니다. 방송국 막내 작가로 월급 40만 원에, 그 값을 훨씬 상회하는 욕지거리를 먹고 살았고, 오물이 역행하는 반지하에서 가장 친한 친구이자 룸메이트인 '박'과 함께 깔깔대며 지냅니다. 옥탑방으로 이사 온 뒤로는 4분 간격의 출근용 알람을 맞추고, 해 뜨면 '또' 보증금을 벌러 가기 위해 함께 잠을 청합니다. 이런 일상 속에서 술 먹다가 유리문에 들이받아 앞니가 두 개가 달랑, 나가버리는 빙구 일상을 살기도 합니다. 이런 일상들을 작가님은 그녀의 시선으로, 그리고 이를 담아내는 글로 한 편의 낭만 영화 한 편을 뚝딱 만들어냅니다. 가난하면 뭐? 내가 짱인데 뭐! 라고 말하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저는 제 인생이라는 드라마 주인공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강이슬 작가님 같은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달라고 삼신할머니 바짓가랑이 잡고 빌려고 합니다. 아니면 말마따나 시시콜콜한 일상을 <쌈 마이웨이>로 바꿔버리는 작가님의 시선이라도 제 시선에 심어달라 부탁해보고 싶습니다. 기대 없이 읽었는데 최애 책이 되어버린 <안 느끼한 산문집>! 아프니까 청춘이다, 당신의 인생은 이래서 망했습니다! 같은.. 소위 '니가 뭔데?' 생각이 들게 하는 그런 느끼하고도 일방향적으로 강력한 책들과는 다릅니다. 조금 더 느끼했어도 괜찮겠다 싶을 정도로 안 느끼합니다. 감동과 발랄함으로 읽고나서 한동안 환기된 기분을 느끼고 싶으시다면,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인생에 용기가 필요하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십사 하는 <에필로그> 발췌로 글 마무리하겠습니다.
'나는 존나 짱이다. 시벌탱. 나는 이렇게 놀라울 정도로 정상이고 훌륭한데 세상이, 나라가, 쟤가 좆 같아서 잘될 뻔한 일이 망해버렸구나. 내 탓이 아닐 때는 내 탓을 하지 말자. 내 탓을 경우에는 내 탓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애써 찾아 탓하며 정신 승리를 하자. 가만히 있어도 나를 까고 밟아대는 세상에서 나까지 자신을 코너로 모는 것은 너무 가혹하니까. 나라도 제대로 각 잡고 서서 내 편이 되어주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롭다'😇
(작가님의 <새드엔딩은 없다> 도 강추..ㅎㅎ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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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 박사님 여기요 여기!!!
협진 부탁드립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수능 공화국입니다. 오죽하면 '고3은 벼슬이다'라는 말이 존재하며 수능 날엔 (폭설이 내려도 결근은 없는 대한민국에서) 출근 시간을 미뤄주겠습니까. 도로를 통제하고 지각 위기 수험생은 경찰차를 불러도 이해받는, 공권력을 사적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허용되는 국가적 기념(?)일입니다.
그런 대한민국에서 입시, 수험생을 소재로 삼은 TV 프로그램의 존재는 너무나도 자연스럽습니다. (1년이든 10년이든) 입시를 앞둔 수험생과 그 부모들의 최대 관심사니까요. 그리고 그 시기를 거친 사람이라면 누구든 깊은 설명 없이 이해, 공감할 수 있기에, 어쩌면 온 국민 대통합 소재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입시, 방송하면 떼어내려야 떼어낼 수 없는 직업군이 있습니다. 바로 '일타 강사'입니다. <일타 스캔들>, <졸업> 등 드라마에서도 다뤄지며 '인강' 세대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친숙한 존재입니다. 그들이 받는 몇십억 연봉, 강의를 듣기 위해 티켓팅하듯 줄을 서는 부모들과 성적 향상이 절실한 수험생들로 인해 신격화되기도 합니다. 이들은 마치 연예인처럼 강의에서 '쇼'를 합니다. 그 '쇼'는 학생들의 기억에 깊게 남기 위함이라는 좋은 명목하에 마케팅적 목적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강의 실력에 더불어 강사의 캐릭터성이 중요한 시장입니다.
<티처스>는 말 한 번 섞기 힘든 일타 강사 정승제, 조정식 선생님이 문제 학생을 직접 맡아 성적 향상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프로그램입니다. 30일간 직접 지도, 교육하며 공부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학생들에게 솔루션으로써 '기적을 행하는' 은혜를 내려주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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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처스>를 본 적이 없는 분들도 숏폼을 넘기다 한 번은 봤을 법한 조정식 선생님의 유행어.
- 영단어 외우는 데 몇 분 걸려요?
- 어....
- 오케이 됐어요. 이 친구는 단어를 외워본 적이 없는 거예요.
전 영단어 겁나 많이 외워봤지만 주로 이동할 때 공부해서 분 단위로 여쭤보시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데요...🤔 물론 '영어 성적 향상을 목적으로 공부하는 학생은 시간을 재서 외워야 한다'라는 의도 자체는 이해합니다만... 숨 쉴 시간도 주지 않고 대사를 뱉는 모습에서 마치 솔루션보다 대사 자체가 목적인 듯한 뉘앙스가 풍겼습니다.
<티처스>에서는 정말 많은 눈물을 볼 수 있는데요, 솔루션을 받기 전 학생과 부모의 간절한 눈물, 솔루션을 받으며 힘들어하는 학생의 눈물, 솔루션 성공 후 기뻐하는 학생과 티처의 눈물 정도로 구분할 수 있겠습니다. 선생님들은 학생이 목표를 달성하면 '잘했다, 수고했다, 고맙다' 등의 칭찬을 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립니다. 또 솔루션 당시에도 '너한테 내 커리어를 걸었어' 등의 말을 합니다. 저는 이 말들이 진심으로 인생을 응원하는 학생에게 하는 격려보다는 마치 학원 강사로써 쌓는 포트폴리오에게 하는 평가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조정식 선생님은 <티처스> 이후 수강생 수가 눈에 띄게 늘었다고 하죠.
30일은 마라톤을 달리는 수험생에게 결코 긴 시간이 아닙니다. 하지만 날고 기는 '그' 일타 강사들이 바로 옆에 붙어서 집중 코치를 해주면 충분히 스퍼트를 낼 수는 있는 기간입니다. 1등을 하지 못했다며 혼을 내는 엄마, 의대에 가야 한다고 압박을 넣는 아빠... 드라마 속에만 존재하지 않음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바짝 공부해 성적이 오르는 것이 그들의 아이에게 마냥 좋은 일일까요? 만약 솔루션 후에 성적이 떨어지면요? '할 수 있는데 왜 노력을 안해!' 더 큰 호통이 내려지진 않을까요? 같은 증상을 겪고 있는 TV 바깥의 학생이 자괴감 또는 실패감에 갇히면 어떡하죠? '난 일타 강사가 없어서 안 되는 거야...' 하면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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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레벨'이라는 단어도 참 지긋지긋합니다. 무슨 무슨 라인, 죄수생, 군수 등 성적 만능, 학벌주의적 단어가 서슴없이 등장합니다. 프로그램의 포맷 자체가 그러하긴 하지만, 결과 지향적인 표현이 너무나 당연시되는 이 스튜디오의 분위기가 약간은 불편했습니다. 모든 결론과 사고가 성적, 대학으로만 귀결되는 느낌? 이 아이가 대학에 가면 어떻게 될지, 현 대한민국 계급 사회화의 출발점은 아닐지 염려됩니다. 방송에서 사교육을 경계하고 선행 학습을 반대한다고 말하긴 하지만 실은 사교육의 최전선에 있는 일타 강사들이라 제가 선입견을 품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승제 조정식 선생님께 악감정이 있는 건 아닙니다... 사실 입시 강사 중에서는 인간적인 면이 가장 큰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채널의 다른 프로그램, <금쪽같은 내 새끼>의 오은영 박사님 솔루션이 더 시급해보이는 학생들도 많았습니다. 문제 학생보다는 문제 부모인 경우, 가정 환경의 변화가 절실해 보였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공부를 못하면 결과적으로 성적표에 찍힐 숫자들은 어떡할거냐, 하면 저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들의 인생을 결정할 수는 없으니까요. 다만 수험생 시절을 겪었던 한 사람으로서 방송에 나온 학생 아이들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금쪽같은 내 새끼> 제작진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필요시 오은영 박사님을 특별 패널로 불러 협진하는 포맷도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심각한 경우 저쪽 프로그램으로 아이를 넘길 수도 있구요. 콘텐츠적 측면에서도 더욱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학생들이 한 명 한 명 쌓이며 선생님들의 진정성이 부족해보이는 경향도 있습니다. 진정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도 '목표 도달! 실패!' 후에 우리의 인연은 끝! 하는 것이 아니라 에프터 케어를 해주는 것이 도움 될 것 같습니다. 특별 회차를 제작하는 것도 좋고, 솔루션이 끝난 학생에게 앞으로의 공부 방향과 유의할 점을 조금이라도 지도해주는 것은 어떨까요? 남은 2년, 5년, 7년 동안 앞으로 나아갈 힘을 심어주는 좋은 프로그램이 될 것 같습니다. 성취감으로 인한 자신감은 인간에게 정말 좋은 원동력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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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입니다.
언론고시 3관왕(부럽다...) 전현무님의 모의 면접 장면, '학생은 무엇입니까'에 대한 답변이었습니다.
사실 영어권에서는 'teacher'라는 말을 호칭으로 쓰지 않는다고 하죠. 대신 이름을 부르거나 professor, tutor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티처스>에 출연하는 선생님들은 tutor로써는 정말 훌륭한 분들입니다. 하지만 한자문화권에서 사용하는 '선생'이라는 단어는 교육자 뿐만 아니라 존경할 만한 위치의 사람에게 모두 사용 가능합니다. 그런 면에서는 영어 단어 'mentor'로 이해하는 것이 더욱 적합하지 않을까요? 학습 능력 향상 뿐만 아니라 인생의 방향성을 다듬을 수 있는, 존경할 만한 지도자 말입니다. 교권 문제가 심각한 요즘에는 조금 조심스러운 말이기는 합니다만, tutor가 아닌 mentor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생님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특히 방송에 나와 광범위한 대상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수험생의 신과 같은 분들은 더더욱이요.
학생들의 성장과 노력이 기특하고 적확한 솔루션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어 매 화 정말 즐겁게 시청했습니다. 사실 너무 노골적이라 씁쓸했을 뿐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가감없이 보여주는, 그래서 필요한 방송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정말로 공부를 해본 적이 없는 학생, 스스로 한계를 느껴 도움이 절실한 학생들에게는 한 줄기 빛과 같은 프로그램일 겁니다. 그냥 '그래도' '방송인데' 하는 보수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표현과 진정성 문제를 유의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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