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주차] 나는 생존자다, 대환장 기안장 험한 세상...
오늘도 생존했음에 감사!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위기 - 기회
문제 - 과제
무모함 - 도전정신
불완전함 - 가능성
어때요? 비슷한 말이지만 미묘한 단어 선택으로 느껴지는 뉘앙스에 큰 차이가 생깁니다. 이처럼 단어가 갖는 힘은 생각보다 큽니다. 언어는 실제로 뇌가 작동하는 방식과 큰 영향이 있고, 이어지는 행동과 생각 자체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단어를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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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JMS라는 단어를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시킨 <나는 신이다>의 후속작, <나는 생존자다>에서도 이러한 단어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 시리즈는 형제 복지원, JMS, 삼풍백화점 등 한국에서 일어난 다양한 사건들로부터 생존한 자들의 이야기를 조명하며 사건을 파헤치고 있습니다.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 보다 주체적이고 긍정적인 뉘앙스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시리즈 내내 두가지 의미로 해석되며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ing의 의미. 생존자들이 겪는 고통이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입니다. 장애, 합병증, 정신적 충격, 사회적 시선 등 해당 사건으로 인한 여파와 후유증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는 형제 복지원 사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데요. 가해자 가족들은 착취한 돈으로 부유하게 살며 2차 가해를 하는 반면, 당사자들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합병증으로 고통받고 사망자 수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존파 사건의 피해자는 지나친 관심을 받은 나머지 지금도 인간 관계를 맺는 것조차 어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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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는 could be. 사건은 대상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그에 휘말려 사망할 수 있었고, 그 사건들로부터 살아남은 우리 모두가 생존자라는 의미입니다. 시리즈의 말미, 삼풍 백화점사건을 마무리지으면서 건축물 붕괴 사고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짚으며 다큐멘터리가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말합니다. 이러한 사건들이 비단 '남 일'이 아니라고 말이죠. 그리고 이러한 사건들을 잊지 않음으로서 앞으로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경각심을 잡자고, 사건을 분석적으로 바라보며 구조적인 문제를 바로잡자고요.
사건의 경위나 배경을 묘사하고 설명하는 것을 넘어 직접 겪은 생존자들의 시점을 다뤘다는 점에 다른 사회 고발형 다큐멘터리와 차별성이 있습니다. 시점의 차이 때문인지 아픔에 대한 공감의 정도, 당시를 묘사하는 생생함의 정도가 다릅니다. 시청하다가 마음이 힘들어 일시정지를 눌러야 했을 정도... 직접 가해자 가족을 찾아간다거나 사건 이후의 삶, 현황을 알려주는 구성 또한 '현재진행형'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것 같구요, 전 편 <나는 신이다> 이후 PD 또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내용을 담음으로써 '생존 신고'를 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건들을 당시의 상황, 재현, 고발 정도에 그치지 않고 더욱 깊게 다루는 점이 좋았습니다. 사회적 논의를 이끌어내면서 사건을 곱씹을 방향성을 열어줘서 직설적이지만 마냥 자극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삼풍 백화점 등 다양한 사건을 다뤄서 더더욱 '생존자'라는 키워드,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는 메시지가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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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웠던 장면은 형제 복지원 생존자 인터뷰 장면에서 당시와 똑같은 트레이닝복을 입히고, 복지원을 세트로 재현한 연출입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나?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할 이유가 있나? 2화의 성폭행 장면에 대한 재연 또한 대놓고 직접적이진 않지만 다소 선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해 당사자가 담담하게 회고하는 인터뷰만으로도 그 끔찍함을 전달하기엔 충분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자극적이지 않아서 그가 얼마나 오랜 기간 고통받았고 언론 앞에서 당시를 회상하는 데 무뎌졌는지 와닿았습니다. 해당 장면은 모든 성폭행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자극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더욱 조심스러웠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신이다> JMS 편에서도 '나체 동영상'을 내보내 선정성 논란에 휩싸였는데요, 이에 대한 당위성을 나름(?) 항변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영상은 입수한 동영상 중 그나마 덜 자극적이며, <나는 신이다> 이후 JMS의 실체에 충격을 받고 탈퇴한 신도가 많다는, 이른바 충격요법이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형제 복지원 사건과는 결이 다릅니다. 정말 정말 불필요했다고 봅니다. 지존파 사건 피해자가 그러한 세트가 없음에도 인터뷰 도중 당시를 떠올리다 공황 증세를 보이는 장면도 나오는데... 제작진의 경각심이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이렇게 자극적인 방법으로라도 사건이 조명을 받기를 바랐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동안 형제 복지원 피해자들은 꾸준히 언론 앞에서 목소리를 냈다고 하는데요, 인상깊게 읽은 칼럼의 문구를 인용하겠습니다.
“그때의 지옥을 있는 그대로 구현했다”는 연출 방식에 문제는 없는지 우려하면서도, 생존자들이 그 트레이닝복을 스스로 입게 만든 책임은 우리가 모두 나눠서 져야 하지 않나 생각하게 되는 건 일말의 사과 없이 흘러간 시간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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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파 사건 선정에 대한 의문점도 존재합니다. 다른 사건들의 경우 사회적 문제로 확장할 여지가 많고, 다전달하고픈 메시지가 명확합니다. 반면, 지존파 사건은 약간은 뭉툭하게 끝난 경향이 있습니다. 사건 자체로서 파헤칠 부분은 많지만 말하고 싶은 이야기, 결론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고, 불필요한 가지가 많다고 느껴졌습니다. '부자들에 대한 반감'이라는 지존파의 범죄 동기가 더 높은 층위로 나아가지 못하고 개인의 문제에 머무르기 때문에 다른 에피소드에 비해 마무리가 아쉽습니다. (사회적 계층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으나 제작 과정에서 올바르지 않다 판단해 방향을 틀었나 싶을 정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표현으로 유명한 지강헌 사건에 지존파가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해당 사건을 함께 다루며 '88올림픽 즈음 빈부격차가 극심했다', '지금도 사회적 계층은 존재하며 이를 완화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정도의 메시지만 더해졌어도 좋았겠지만..! 그랬다면 약간은 지존파 범죄를 옹호하는 느낌도 있을 수 있었겠습니다.
생존자에 대한 위로를 전달하고 싶었던 거라면, 조금 더 '개인적'인 사건 또는 사회적 논의가 일어날 만한 범죄 사건으로 선정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예를 들어 교제 살인이나 '묻지마' 폭행 같은...? 가해자의 배경이나 동기, 사건 당시의 상황보다는 예방할 법과 조치, 피해자 보호, 사회적 인식 개선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했습니다. 계획성/잔인함/조직성이 강조되는 지존파 사건보다는 정말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공포감에 더욱 많은 피해자들이 공감하고 더 명확하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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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가 화가 나서 시청을 멈추었다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분노했던 장면은 형제복지원 생존자가 가해자 박인근의 가족이 살고 있는 호주에 찾아간 장면입니다. '50년이 넘은 사건이 아니냐', '이 사람이 왜 피해자냐'라며 2차 가해를 하는 것은 물론, 대화를 거부하며 경찰을 불러 PD와 생존자를 집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하는 가해자의 가족들. 피해자가 자신의 치부를 보여주며 피해자임을 증명하고, 대화를 나누자고 애원해야 하는 상황 자체도 화가 났지만, 박인근의 조카와 조카 사위가 그 간절한 모습을 두 눈으로 똑바로 바라보면서 차 안에서 웃음을 흘리는 장면에서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이 지점에서 혈압이 너무 올라서 일시정지를 누를 수밖에 없었슨
다행히 글로벌 남바완 OTT 넷플릭스의 영향인지, 호주에서도 이 사건이 화제가 되었으며 기사화가 되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솔직한 마음으로는 형제 복지원 사건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 정부 측에서 재산을 몰수하고 피해 복구 금액으로 사용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정명석에게 세뇌당해 종교 이탈자에게 직접적으로 복수하는 JMS보다, 알면서도 모른 척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며 피해자를 외면하는 박인근의 가족들이 더욱 악마👿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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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슈퍼스타가 되고 싶은 이유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기안 84: "불편한 점 있으면 알려주세요~"
🙄 손님: "..? 여기가 불편해요~"
대리 힐링이 아닌, 대리 불편을 선사하는 5성급(?) 민박집이 있습니다.
바다에 동동 떠 있어서 체크인을 하려면 배를 타고 들어가야하고, 문이 없어 객실에 가기 위해서는 3.8 미터 민박집 벽을 클라이밍 해야합니다.
민박집이니까 1층이냐고요? 아니요.
그럼 엘리베이터가 있냐고요? 아니요.
그럼 어떻게 1층에서 윗층으로 올라가나요? '봉'을 타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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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렇게🦶
사실 이 봉은 '거침없이 하이킥' 오마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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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에 있는 이 민박집의 주인장이자 설계자는 바로 기안 84입니다.
기안이 주인장이 되어 자신이 운영하고 싶은 민박집을 설계하고 실제로 운영하는 건데요.
자신이 원하는 민박집을 스케치하면, 제작진이 그대로 만들어냅니다. (제작진 진심 존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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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은 사장 포함 셋입니다. 기안84, 진, 그리고 지예은.
처음에는 이게 무슨 조합인가.. 싶었는데요.
하고 싶은 게 많은데 또 민폐 끼치는 것은 싫어하는 나름 맘 약한 사장님, 생전 처음 보는 것들에 경악하는 (=시청자 대변) 막내 직원, 그리고 막내와 손님들의 질겁에 낭만과 현실을 타협할까 흔들리는 사장님 옆에서 '타협은 없다'며 낭만 유지에 기여하는 실세 직원 진까지. 이런 성격을 알고 캐스팅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성격이 모두 다른 셋이 조화가 참 좋았습니다. 여기서 직위와 성격이 달랐어도 지금의 그림이 안 나왔을 것 같습니다.
예로, 기안장에는 그림처럼 일반적인 출입구가 없습니다. 손님들도 나갔다 들어올때마다 무조건 클라이밍을 해야하고요. 첫날 밤을 지냈던 별장에는 아궁이가 있는데 굴뚝이 없어 밥만 지었다 하면 매캐한 연기가 집안을 가득 채웁니다. (거진 화생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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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포함 손님들도 불편하니 정상적인 출입구를 만들자는 지예은에 사장님은 흔들리는데요, 옆에서 진은 '절대 안된다'며 말립니다. 첫날 밤, 화생방에서 첫 숙박객들을 위해 저녁을 준비할 때 물회를 외부에서 사오자는 지예은에 진은 '직원들은 서비스를 대접해야한다'며 단칼에 외식 제안을 거절합니다. 중간에서 마음 약해진 기안84는 아쉽지만 '그럴까..?' 흔들리다가도, 진의 다잡음으로 낭만파의 손을 들어줍니다.
여기서 사장님이 진 같은 성격이고, 중간 직원이 기안84 같은 성격이었다면? 혹은 사장님이 지예은 같은 성격이고, 막내 직원이 기안 84였다면?
뭔가 느낌이 애매해집니다. 전자였다면 자율성이 없는, FM스러운 느낌이 더 강했을 것이고 후자였다면 지금의 낭만은 볼 수도 없이 인천 어딘가에 있을 법한 익숙한 호텔 분위기가 났을 것 같습니다. 낭만을 추구하지는 않지만 인생이 낭만인 사장님과, 그런 사장님의 사고를 존중하는 중간 직원, 현실 타협점을 찾으려는 막내 직원까지 오랜만에 답답한 구석 없는 출연진 케미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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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집이니 숙박객을 받아야겠죠. 곤충을 좋아하는 카이스트 학생들부터, 어린 아들 둘에게 추억을 만들어주려고 온 아버지, 취준생 청년들, 그리고 탈북민 청년까지. 다양한 청춘들이 찾아옵니다. 저녁을 지어먹고 한 사람씩 봉 타기를 도와주고, 야외 풀장이라고 쓰고 그냥 쌩 바다에서 다같이 수영도 하고, 술도 마시며 MT 분위기를 낭낭하게 냅니다. 낯선 청춘들끼리 모여서 밤새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바다에 뛰어드는 모습에 보면서 저 역시 저 자리에 끼고 싶다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더라고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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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그램 정주행을 시작하기 전에, '효리네 민박'을 제작한 정효민 PD가 이번에는 기안 84와 함께한다며 프로그램 홍보를 하는 모습을 몇 번 봤었습니다. 사실 볼 때마다 든 생각은, 전형적인 기안의 모습을 또 소비하는구나 싶어 그닥 흥미가 생기지 않았는데요. 유튜브에 간간히 뜨는 숏츠를 보다가 '정말 기안스러운데, 제대로 보지 못했던 기안스러움'이라는 생각에 홀린 듯 정주행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다 보고 리뷰를 찾아보니 저 같은 사람들이 꽤 많더라고요.
보면서 참 '자기스러움'으로 누군가를 끌어당길 수 있다는 점이 멋지고 부러웠습니다. '통상적인' 라이프(?)와는 70% 정도 다른 것 같은 이미지로 소비되는데, 그 안에서도 나혼산의 날 것의 모습, 태계일주의 의리가 덧대진 날 것의 모습, 그리고 어쩌면 날 것의 원천이 되는(?) 기안장의 동화스러운 상상력이 기안의 다면적인 면 중 또 다른 하나를 베일 벗긴 듯 싶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직업이 웹툰 작가이기에 항상 비일상을 상상해내는데, 그런 그의 모습을 현실과 엮으려니 일말의 괴리가 예능 포인트가 된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그의 이런 '상상력'을 실제로 구현해서, 일상에 그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그에게 맞추니 이러한 동화적인 공간이 나올 수 있었지 않나 싶습니다. 한마디로 저는 어른 동화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누군가는 힐링하러 간 민박집에서 왜 불편을 겪어야하나, 불편한 눈초리를 보낼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루종일 경악하고 놀라고 깔깔대던 손님들이 체크아웃 시간만 되면 아쉬워하고, 불꽃놀이 같은 절경을 '기안 84도 같이 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읊조리는 걸로 보아선 어쩌면 불편한 낭만이 누군가에게는 되려 잊지 못할 힐링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소민 PD의 말마따나, '나도 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아니라 '나 대신 누가 가줬으면 좋겠다'라는 느낌을 유도했다고 하는데, 아직 청춘인 (ㅎㅎ) 저는 시즌2를 한다면 꼭 신청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제게 힐링은 편함보다는 불편한 낭만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나 봅니다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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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이후, 사장이랑 직원들이 모여서 찍은 리뷰 영상인데요. 기안84가 멘탈이 나갈 때마다 진이 해줬다는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형이 어설픈 연예인이니까 흔들리는 거지. 그냥 밀고 가 형’이라고 했다더라고요. 장난 반, 조언 반이었겠지만 이 '어설픈 슈퍼스타'란 말이 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낭만무새가 된 것 같지만, 완벽에서는 낭만을 찾기 어렵습니다. 어설픔이 있으니까, 그 사이를 메우기 위해 무언가를 의도치 않게 하면서 생기는 예상 외의 순간들이 낭만인 거니까요. 그 모습이 그 모습인 푹신한 호텔 침구보다 비포장 도로에서 몇시간 구르다 기절한 기억이 더 강렬한 걸 본다면요.
여튼, 시즌2 계획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asap으로 만들어주시면 너무 좋겠다!!🌝 라는 의견과 함께 글 마무리하겠습니다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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