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깡 🍟   

일진. 사전 상 '군사들의 한 무리'라는 뜻을 갖고 있지만, 요즘은 비행청소년이라는 뜻으로 주로 쓰이는 단어입니다. 일종의 학생 깡패라고도 할 수 있죠. 수업시간엔 교실 맨 뒷자리에서 엎드려 자다가, 무리지어 다니면서 위화감을 조성하는 '무서운 친구들'이 어느 학교에나 한 두명 씩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강압적인 분위기와 서열 속에서 눈치 보며 '할 말'을 못 한 경험, 심하게는 돈을 뺏기거나 괴롭힘을 당한 경험도 분명 한 번쯤은 있을 겁니다. 저 또한 그랬던 적이 있구요. 자기들끼리 교실 뒤에서 깔깔대면서 떠들거나 친구들을 놀릴 때 책상을 쾅! 치고 일어나서 '조용히 좀 해라!!!'라고 외치지 못한 이유는, 제가 평화를 사랑하거나 싸우기 싫어서, 가 아닙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약하기' 때문입니다. 괴롭힘 당하거나 갈등 상황에 놓일 게 무서워서요. 그들에게 맞설 방법, 그들이 굴복하는 것은 단 하나 뿐이었습니다. 폭력. 그들만의 리그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이죠.🤜🤛

싸움짱이 되어서 저 나쁜 애들을 혼내주고 싶다는 상상도 해봤습니다. 막 이렇게 저렇게 해서 막막 어떻게 저떻게 하면 다들 나를 무서워하고 함부로 대하지도 못하겠지? 하구요. ㅎㅎ😅

물론 저는 살면서 (동생 제외) 사람을 때려본 적도 없지만, '짱'이 되고 싶다는 무력에 대한 욕망은 모두의 마음 속 깊은 곳 어딘가 존재하나 봅니다. 느와르, 액션, 히어로물이 끊임없이 제작되고 인기를 끄는 이유도 그 욕망을 제대로 건들이기 때문 아닐까요? 현실에서는 하지 못할 '폭력을 통한 정의 구현'을 대신 해주거든요. 강하고 못된 빌런들이 무시했던 주인공에게 혼쭐이 나는 모습을 보면서 통쾌함을 느끼는 거죠. 모두의 빌런 일진에게 모두가 한 번쯤 상상했듯 복수를 하는 <더 글로리> 문동은이 히어로같아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약한 영웅>의 시은이는 우리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서 우리에게 가장 가까웠던 빌런들을 혼내줍니다. 공부밖에 모르는 몸이 왜소한 아이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싸움을 합니다. 그것도 아주 잘. 주무기는 펜🖊️과 두뇌🧠, 주변의 지형지물을 활용하거나 심리전을 통해 상대방을 제압합니다. 이렇게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주인공이 이끄는 <약한 영웅>은 비현실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잘 만든 클리셰'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특히 'Class 1'의 경우 원작 웹툰에서 시은이의 과거 이야기로 짧게 나온 분량을 각색해, 입체적인 캐릭터와 뛰어난 액션 신, 성장 우정 서사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주인공 배우 박지훈에게는 청룡 신인 남주상을, 작품에게는 아시아 콘텐츠 어워즈 베스트 OTT 오리지널 상을 안겨주기도 했죠.

저는 원작에 대한 정보 없이 감상했는데, 주인공만큼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안수호, 오범석 캐릭터가 드라마에서 거의 새로 탄생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범석의 국회의원 아들 배경 설정이나 수호의 운동선수 출신이라는 캐릭터 덕분에 스토리의 개연성과 서사가 깊어졌거든요.

그래서 새로운 캐릭터가 대거 등장할 'Class 2'에 대한 더욱 기대가 컸습니다. 전편보다 성장한 주인공, 개성 넘치는 조력자, 강하고 다양한 빌런 카르텔(?)을 생각하면서요.😳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요. 3년 만에 돌아온 <약한 영웅 Class 2>는 전작의 장점은 줄고 단점은 커진 느낌입니다. 평면적이고 서사가 없는 은장고 친구들과 시은이는 언제 이렇게 진한 우정을 쌓았나 모르겠구요, 액션 신의 임팩트도 떨어집니다. 조력자들의 캐릭터성이 약해서, 이준영 배우가 연기한 (최종 빌런도 아닌)악역 금성제나 카메오로 출연한 조정석 배우가 더 매력적일 정도입니다.🥲

무엇보다 폭력의 무서움을 알고 있는 시은이가 폭력을 멈추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폭력이라는 전개가 개연성이 부족하다 생각했습니다. 그것도 펜으로 찌르는 것도 모자라 너클을 끼고 2:1로 다구리를 하는.... <오징어게임3>의 성기훈 캐릭터처럼 대책 없이 말리는 것도 시은이가 할 법한 행동은 아니지만, 'Class 1' 에서의 성장이 초기화된 듯 방관자가 되기를 택했다가 바로 폭력으로 응수하는 것도 제가 아는 시은이는 아니었습니다.🤔 최소한 다른 방법을 찾아보려는 노력이라도 보였다면, 내적 갈등하는 모습이라도 묘사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어쩌면 이 행보(?)는 고민의 과정이 생략되었을 뿐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힌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폭력을 멈출 만한 힘은 폭력을 통해서만 발휘된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아이러니에요. 슬프지만요. 이뿐만 아니라 '사건'이 생기기 전에는 행동하지 않는 경찰, 비행 청소년을 이용하는 '진짜 나쁜' 어른 등 <약한 영웅> 속에는 안타까운 현실이 많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시은이의 폭력은 폭력을 멈췄을까요? 혹은 더 큰 폭력을 불러일으킬까요? 어른으로서의 의무를 회피한 어른들에겐 어떤 책임을 지게 할 수 있을까요?

시청하는 내내 저 정도로 깡패같은 학생들이 어딨어, 비현실적일 정도로 잔인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실제로 목격하지 못했을 뿐 이런 어두운 청춘들 역시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할 것입니다. 폭력만이 그들을 구원할 방법일까요? 날 것이라 더 잔인하고 일상이라 더 공포스러운 학교 폭력. K-하이틴 느와르 장르가 픽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더 글로리>도 <피라미드 게임>도 <약한 영웅>도 전부 얼토당토 않는 이야기라 비판받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오늘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구독자님의 의견이 궁금해요!
피드백 남기러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