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씨는 매일 아침이면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화분들에게 물을 주고, 작업복을 입은 후, 카세트 테이프를 틀어 올드팝과 함께 동이 트는 도심을 달리며 출근을 합니다. 점심시간에는 공원의 벤치에 앉아 편의점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필름카메라로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찍는 취미가 있습니다. 쉬는 날이면 매일 낮에 찍은 사진을 사진관에 맡기고,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하거나 헌책방에 가서 책을 산 뒤 단골 술집에서 술 한잔을 하기도 합니다. 가끔씩은 악몽을 꾸기도 하구요. 이렇듯 히라야마는 정해진 루틴에 따라 늘 같은 하루를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잔잔한 히라야마의 일상에 파동을 일으키는 사건들이 일어납니다. 동료 타카시는 일하기 싫어하고 돈이 없어 여자친구 아야와의 관계에 고민하고 있는 청년입니다. 아야는 히라야마의 패티 스미스 카세트 테이프를 들으며 노래에 반합니다. 그리고 몰래 그 테이프를 가방에 넣지만 얼마 뒤 이를 돌려주기 위해 찾아옵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듣고 싶다며 함께 차에 탄 아야는 감사의 의미로 히라야마의 뺨에 키스💋😲를 해주고 떠나갑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도 히라야마는 평소와 다름없이 화장실 청소를 합니다. 타카시에게 돈을 빌려줬더니 일을 그만둔 후에도,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더라도, 루틴을 깨뜨리는 것들에 아랑곳 않고 작은 파도들을 지나보냅니다.
얼핏, 반복적이고 일상에 대한 가치를 보여주는 영화 같습니다. 히라야마씨가 매일 찍는 나뭇잎에 비치는 빛(코모레비, 木漏れ日)🍃✨처럼, 반복적 일상 속 매번 다른 소소한 것들에 행복을 느끼는 주인공에게 이입하고 위로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주인공의 머무르고자 하는 강박을 봤습니다. 반복적인 일상, 루틴, 습관이 주는 힘은 분명 있습니다. 평온한 감정을 가져다주면서 잡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죠. 히라야마씨는 반복하는 소소한 삶이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 규칙을 만든 사람 같아 보입니다. 사람의 매일은 절대 같을 수 없습니다. 점심으로 먹고 싶은 메뉴도 매번 다르구요, 어떤 날은 유행하는 팝 음악이 듣고 싶다가도 어떤 날은 묵직한 메탈 음악에 머리를 흔들고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히라야마씨는 의식적으로 루틴을 반복합니다. 주인공에게 '지금의 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오래된 책📕, 올드팝🎧만을 들으며, 매일 같은 편의점 샌드위치🥪를 사 먹습니다. 모두 익숙한 것들이죠. 이미 과거가 된 '오늘'을 계속해서 되짚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출해서 찾아온 조카 니코와의 대화 속에는 과거가 없습니다.
나중은 나중이고, 지금은 지금이야.
이러한 모습들로 유추하건데, 히라야마씨는 과거를 의식적으로 떠올리지 않으려는 방어 기제로써 루틴을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여동생과의 대화를 들어보면 과거 아버지/가족과의 관계에 있어서 어떠한 상처를 갖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는 '지금'의 소소한 행복을 느낌으로써 과거의 상처를 잊고자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방식이 '매번 다른 순간'이라는 뜻의 코모레비가 의미하는 바와 달리, '현재의 나'가 아닌 만들어낸 과거에 머무르는 것이었던 거죠.
이동진 영화 평론가의 좌우명이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 대로'라고 합니다. 유튜브 채널 <최성운의 사고실험>에 나와 이 좌우명에 대해 말한 적이 있는데, 인간은 너무 나약해서 삶을 통제할 수 없지만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다 보면 조금 덜 후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합니다. 액센트는 뒤에 있다고 했습니다. 성실하게 살아도 되는 대로 흘러가는 인생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고, 더 넓은 개념인 전체인 만큼 그 흐름에 순응하고자 한다고 했습니다.
히라야마씨는 '하루하루는 성실하게'만 충실히 지키며 살았던 게 아닐까 합니다. 자신의 과거를 외면하고자 특정한 시점을 '현재화'시켜서 반복해왔던 것이죠. 하루하루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해나가며 상처에서 벗어나 순간의 행복을 느낄 순 있었을 것입니다. 실은 진실된 현재에조차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한 채로요.
많은 극찬을 받고 주인공 배우 야쿠쇼 코지에게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까지 안겨준 마지막 장면입니다. 오늘도 새로운 모습으로 떠오르는 햇빛☀️을 맞으며 출근하는 길, 미소를 짓다가 울다가... 복잡미묘한 표정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습니다.
가출한 딸을 찾으러 온 여동생을 마주하고, 좋아하던 술집 주인 전남편의 말기암 사연을 들은 후입니다. 그간 묻어놓은 과거와 외면해온 상처가 들춰진 후 저항할 수 없는 인생의 불규칙성을 받아들이게 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멈춰 있는 동안 시간의 흐름과 변화가 와닿자 약간의 후회와 슬픔을 느끼는 동시에, 삶의 즉흥성이라는 진정한 코모레비의 하루를 살아갈 생각에 복합적인 감정을 느낀 게 아닐까요. 결국은 앞으로 나아가게 된 히라야마씨. 그는 비로소 완벽한 나날들을 보낼 준비가 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