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4주차] 라이딩 인생, 비바리움 스포츠카: 박살날게
교장: 거대한 AI '보안' 체제를 구축해 학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CCTV로 감시할게 |
|
|
공포와 분노 사이 선을 넘는 장난들과
영원하자는 약속을 나누던 순간만은 영원히 남길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연재해는 공평합니다. 착하게 살았다고 피해가리란 법도, 악당이 가장 호되게 당하리란 법도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무섭습니다. 예방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으니까요. 모두에게 공평하게 공포스럽게 존재합니다.
이토록 보편적이고 공정한 공포라는 감정은 전체주의적 통치 체제에 의해 사회 구성원마다 조금씩 다르게 작용합니다. <해피엔드>는 극우파 정치인 기토 총리가 대지진이라는 자연재해를 앞두고 집권하며 신 파시즘이 들이닥친 근미래의 일본을 배경으로 합니다. 클럽에 경찰이 갑자기 들이닥쳐 사람들을 검문해도 이상하지 않고, 얼굴을 촬영하는 것만으로 신원을 감별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일반 시민들을 통제하는 사회입니다.
사실 지진 대책과 시민 통제는 무관합니다. 그렇잖아요? 시민들의 신원이 명확하다고 지진 피해가 줄어드나요? 하지만 공포에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감정을 혐오로 전환할 만한 대상을 만들어주는 건 권력자의 입장에서 굉장히 편한 방법입니다. 마치 그들이 원인인 것처럼 화살을 돌림으로써 본인의 책임을 더는 거죠. 그 과정에서 상처받는 집단은, 소수이자 약자일 수록 좋습니다.
대지진이라는 재앙과 혐오를 부추기는 체제, 학교의 억압과 감시 아래서, 같은 리듬으로 흔들리던 청춘들도 다른 방향으로 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해피엔드>는 다채로운 배경을 가진 아이들의 우정이 사회적 압력과 개인적 신념의 차이 속에서 흔들리고 연대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
|
|
코우는 재일교포 4세입니다. 단지 그 이유 만으로 불시 검문에서 휴대 의무가 없는 영주 증명서를 강요당하고 경찰의 손에 이송되곤 합니다. 친구 유타의 제안으로 저지른 장난의 범인으로 의심당할 때 차별적인 폭언을 들어도 대학 장학금 산정을 위해 고개 숙여야 합니다. 엄마가 운영하는 한국 식당에 적힌 '외부인'이라는 낙서처럼 지워지지 않는 낙인은 친구들과의 미묘한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비교적 여유로운 집안에서 자라 음악을 사랑하는 유타, 남자지만 치마 교복을 입고 다니는 아타, 중국계지만 중국어를 못하는 밍, 흑인 혼혈로 언젠가 미국에 가고 싶어하는 톰. 지진으로 시작된 사회 내부의 균열은, 계급성과 위치성, 성향이 각자 다른 음악 연구 동아리 5인방의 균열로 이어집니다.
코우는 운동권에서 활동하는 후미와 친해져 시위에 나가고 학교의 부당한 처우에 맞섭니다. 어쩌면 가장 직접적으로 차별에 맞닿아있는 인물인 만큼 자연스러운 행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
|
영원히 함께하자는 낭만적인 말을 던지고, 코우에게 아이시테루~ 하는 애정표현을 서슴치 않는 유타는 친구들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그런 유타는 음악보다는 소신을 위해 시위장으로 향하는 코우가 약간은 못마땅하고 약간은 서운한 듯합니다. 또 함께 검문을 당하고 교장의 차를 세웠음에도, 코우만 연행이 되거나 범인으로 몰리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자신의 무능이 싫습니다.
유타의 선택은 회피였습니다. 톰이 이민 소식을 전했을 때도, 코우가 시위장으로 향할 때도 말을 돌리거나 장난을 칠 뿐입니다. 유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학교 밖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요. 다만 기득권층(에 가까운) 유타조차도 체제에 맞설 힘이 턱없이 부족하니, 그 무력함 속에서 희망을 잃은 개인에 가깝습니다. 저항 자체에 비관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어차피 이 세대는 망했어' 하구요. 유타의 마음 속에서는, 땅의 흔들림보다 코우가 다리를 떨 때 느껴지는 진동이 더 큰 불안감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지금의 안락함과 행복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코우가 떠나간다는 신호로 느껴질 테니까요.
적극적으로 분노하고 저항하는 코우와 순간의 행복을 즐기는 데 집중하는 유타. 배경과 가치관의 차이가 우정의 갈림점이 되는 경험은 모두가 어렵지 않게 겪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서글프지만, 누구도 탓할 수 없죠. |
|
|
결국 유타는 그토록 사랑하는 친구를 지키는 데 성공합니다. 혼자 교장의 차를 세웠다고 독박을 쓰고 퇴학당함으로써요. 엄마에게 '세상을 너무 편하게 사는 거 아냐?' 라는 선민의식 가득찬 대사를 던지고 유타를 한심하게 여기며 상처를 주던 코우보다 어쩌면 더욱 용기있는 행동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톰은 졸업과 동시에 미국행을 택했고, 밍은 중국어만 하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구축하기 시작했으며 아타는 직접 만든 교복을 졸업식에 입고 갑니다. 그들은 모두 어떠한 선택을 합니다. 누구에게도 그 선택을 비난할 권리는 없습니다. 존중은 또다른 이름의 연대입니다. 우리는 결국 어떠한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점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서 있습니다.
유타에게는 십 대의 청춘을 오롯이 즐길 자유가 있습니다. 동시에 코우로서는 청춘을 즐기기만 해서는 안될 이유가 충분했죠. 물론 유타가 함께 소리내어준다면 더욱 저항의 연대가 깊어졌겠지만, 지금 이 순간을 즐길 권리, 그리고 그에 따라 만들어질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책임 모두 유타에게 있습니다. 코우가 대학 장학금 앞에선 저항을 멈추고, 유타가 책임을 떠안을 때 침묵했던 것처럼요. 행동하는 것도, 행동하지 않는 것도 선택에 불과합니다. 그 선택들이 이 세대를, 역사를, 사회를 구성하게 되겠죠. |
|
|
코우와 후미를 포함한 저항 세력의 노력 끝에 감시 체제를 거둬들인다는 교장의 발표가 있었던 졸업식,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합니다. 안전을 위해 체제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학생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생존'에 대한 위협과 공포에서 기반한 그들의 말들은 공포의 실질적 원인이 아닌 코우의 가슴에 날아와 꽂힙니다.
'어딘가 찔리는 구석이 있어서 그런 거 아니야?'
'애초에 원인을 제공하지 말았어야지'
(정확한 대사는 아니지만 이러한 맥락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결국 권력자가 원하던 대로 된 거죠. 이 학생들이 나쁘고 이기적인, 멍청한 사람인 걸까요? 이들은 이들의 생존 방식을 택한 것입니다. 직접적으로 체제에 차별당하지 않은 사람들은, 혐오할 대상이 생긴 현실 속에서 화살을 던짐으로써 공포심을 잠재웁니다. 궁극적으론 본인도 피해의 범위 안에 있지만, 권력에 순응하고 규칙을 따르며 당장 안전하게 흘려보낸 오늘에 감사하는 거죠. 명백한 억압이고 횡포임에도 사회적 균열을 만들어 지지 세력을 구축하는, 혐오 정치의 표본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학교 속 학생이 교칙에 영향을 받듯, 어떤 사회적 조직에 속한 개인은 직간접적으로 정치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직접적인 폭력보다, 서로를 공격하고 연대하지 못하게 하는 정치가 더욱 무서운 이유입니다. |
|
|
이 영화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파시즘을 기반으로 한 디스토피아 세계관 판타지라 치부하기엔 지금의 우리가 영향을 받는 사회와 너무나 많이 닮아 있습니다. 지진처럼 불안정한 미래, 일자리 등에 인한 공포가, 체제를 정립할 힘이 있는 권력자보다는 바로 옆사람에게 돌을 던지게 만드는 사회입니다. 선을 긋고 편을 나누어 싸우고 경쟁하는 사람들. 자연재해보다 불공정한 이 공포는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 더욱 크게 작용하기에, 약자들 간의 혐오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차별과 혐오로 만들어진 균열 속 이 세대를 온전히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서로 연대하는 것 뿐입니다. 사랑하는 친구, 가족들과의 연대를 더욱 공고히 해야 합니다.
교장실을 점거한 학생들을 회유하고자 교장이 스시🍣를 건네지만, 그들은 교장의 호의를 내치고 뒤이어 교장실 문을 두드린 코우가 건넨 김밥🍙에 손을 뻗습니다. 간단하지만 권력에 순응하지 않고 연대의 마음을 보여주는 행동입니다. 그리고 연대하는 것은 가장 강력한 저항의 표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이 또한 선택입니다. 개인을 존중하되 '명백한' 차별과 혐오 앞에서 연대할 수 있는 자세가 이 세대에 너무나 절실히 필요합니다. 5인방은 균열과 갈등 속에서도 여전히 우정을 쌓고 서로를 존중합니다. 힘들 땐 서로의 어깨에 기대거나 꼭 껴안으며 위로를 건네고 언제나 서로를 위해 어디론가 달려가는 그들처럼, 희망이 없어보이는 사회에서도 '그렇게 한다고 세상이 바뀌어?'라는 비관적 생각보단 결과가 어떻든 함께 저항하고 연대하는 마음이 널리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무도 없는 육교에서 코우와 유타는 구조물을 사이에 둔 채로 서로를 가만 바라보고 서 있습니다.(맨 위의 포스터에 있는 장면입니다) 전처럼 아이시떼루~ 하는 장난을 치거나 어깨를 맞닿지 않는 모습에서 그들의 관계가 어딘가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 때쯤, 바로 그 순간, 유타가 자신과 코우 사이를 가로지르던 구조물의 '선'을 순간적으로 확 넘으며 코우의 가슴팍을 간지럽히는 장난을 칩니다. 평소에 유타가 친구들에게 자주 치던 장난이죠. 그리고 그 찰나에 화면은 그대로 정지되고, 음악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유타의 '영원했으면 좋겠어'라는 말처럼, 갈등의 시대에도 친구들과 장난을 치고 웃음을 나누던 순간을 다들 영원히 간직했으면 하는 감독의 메시지가 담긴 장면 같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유타가 이제는 다른 방향으로 달리게 된 친구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응원하고 연대하겠다 말하는 것으로도 해석했습니다. 유타의 투박한 표현처럼, 스시의 유혹에도 김밥을 선택하는 친구들처럼, 사소한 선택들이 세상이 그어놓은 선을 과감히 넘어 서로에게 따뜻한 손길로 닿기를 바랍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