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주차] 서브스턴스, 남남
(아직 3월임)
(2024년 작임)
(그런데 2025년에도 이보다 충격적인 영화를 보기는 힘들 듯...)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아니 살아있는 생명체라면 누구나 음식을 먹습니다. 먹는 행위 자체는 너무나도 당연할 뿐더러, 식욕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죠. 하지만 아주 게걸스럽게 음식을 흘리며 먹는다거나, 음식물이 든 입을 크게 벌리고 먹는 모습을 보면 어떨까요? 생닭이나 동물 내장과 같은 식재료의 일부만 가까이서 보게 된다면요? 더럽습니다. 역겹기도 하고요. 다른 욕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기는 것 자체는 자연스럽지만 도가 지나치면? 불쾌합니다.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영화 <서브스턴스>는 인간의 젊음과 미를 향한 지나친 욕망을 비판하는 영화입니다. '한물 간' 여배우 엘리자베스는 50살이 되던 해 더이상 젊고 아름답지 않다는 이유로 방송에서 잘리고 맙니다. 교통사고까지 겹쳐 괴로워하던 중 우연히 '서브스턴스'라는 라임색의 (딱 봐도 위험해보이는)신비한 약물을 얻게 됩니다. 약물을 주입하면 '더 나은 나' (엘리자베스는 '수'라는 이름을 붙입니다.)가 탄생하고, 일주일은 젊고 예쁜 나로, 일주일은 원래의 나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7일이라는 밸런스만 지킨다면 전혀 문제될 게 없지만, 영화 주인공들은 대체로 말을 잘 듣지 않죠. 🤣 본체가 파괴되는 부작용을 알면서도 엘리자베스는 자꾸 수로서의 시간을 연장합니다. 엘리자베스는 수를 갈망하는 동시에 조롱하고, 수는 엘리자베스를 경멸하고 두려워합니다. 결국 그 밸런스는 깨지고, 둘(이자 하나)은 괴물이 되는 내용입니다.
사실 플롯을 놓고 보면 크게 새롭지는 않습니다. 주인공이 어떤 계기로 욕구를 실현할 수 있게 되고, 그 욕심이 과해져서 파멸의 길을 걷는... 다소 뻔하고 예측 가능한 내용이지만 이 영화가 충격적인 이유는, 연출로써 감정과 반응을 끌어올려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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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초입부부터 '더러운'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줍니다. 주인공 엘리자베스가 우연히 제작사 대표의 뒷담화를 엿듣는 장면에서도, 대표가 소변을 보는 소리(...)가 대사를 덮을 정도로 크게 들리구요. 심지어는 손도 씻지 않고 나갑니다. 🤮 이어서 나오는 장면은 데미 무어가 가장 폭력적인 장면으로 꼽은 장면입니다. 그 소변 묻은 손으로 새우를 무더기로 까서 먹는 장면인데요, 새우를 마구 으깨면서 손질하는 손과 씹어 먹는 입 안을 무지막지한 클로즈업으로 보여줍니다. 저는 이때부터 속이 안 좋아지기 시작하더라구요. 😭 새우 껍질의 등허리를 쪼개 먹는 장면은 이후 엘리자베스의 척추를 찢고 수가 나오는 장면과 오버랩돼 수 자체를 '팔아 먹는' 행위를 역겹게 보여준 것 같습니다.
이 외에도 '수'의 몸(특히 엉덩이와 다리)을 적나라하게 클로즈업해 마치 싸구려 포르노 같은 구도를 그린다거나, 엘리자베스가 요리하는 장면을 지나치게 더럽게 연출해서 그녀가 수를 볼 때의 처절하고 역겨운 감정을 함께 느끼도록 합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보고 나면 어딘가 찝찝하고 씁쓸한 감정이 남으면서 기우의 신분 상승 다짐이 사실상 불가능한 현실을 곱씹게 만드는 것과 비슷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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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과 아름다움. 모두가 선망하는 가치임은 분명합니다. 아주 자연스러운 욕망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엘리자베스가 음식에 집착하고 자신을 파괴할 정도로 먹어대듯 스스로를 비관하면서까지 도를 지나치게 되면, 역겹습니다. 이러한 연출을 통해 영화 밖 현실에서 비슷한 일이 이어진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한 것 같습니다. 속이 잔뜩 안 좋아진 채로 영화관을 나서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성형 외과 광고, '신체의 결점'을 '보완'해주는 스타일링 컨설턴트, 바디 프로필... 영화를 보러 들어가기 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친 것들인데, 시청 후에는 너무나도 기괴하고 역겹게 느껴집니다.
이 영화는 스스로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두가지 방법, 거울과 카메라를 아주 많이 활용하는데요(특히 문고리에 비친 왜곡된 자신을 바라보는 장면은 아주 감탄스러웠습니다.), 거울은 내가 바라보는 나, 카메라는 미디어에 비치는 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울 속 엘리자베스는 아름답지만 항상 불만족스러운 표정이고, 카메라 속 수는 자신감 넘치지만 외설적인 시선으로 해석되어 있습니다. 아까 말한 '싸구려 포르노'스러운 연출은 사실 우리의 스크린 속에도 이미 많이 녹아들어있습니다. 단지 조금 과장되었을 뿐이죠. SNS 속 섹스 어필은 너무나도 당연한 문화이고, 유명인과 비연예인을 막론하고 몸을 부위 별로 재단합니다. 가슴이 어떻고 골반이 어떻고, 마치 고기의 품질을 따지듯이요. 가슴과 골반만 따지면 다행이게요? 흉통이며 배꼽이며 다리 길이, 종아리 길이, 쇄골 모양, 중안부, 두상, 무릎 형태.... 소고기도 이정도로 부위가 다양하지는 않을 겁니다. 스크린 속에서 사람들, 특히 여성의 몸은 살아있는 인격체가 아닙니다. 평가당하고 씹어먹히는 고깃덩이에 가깝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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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다 알고 있는 얘기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한 얘기 중 새로운 논의는 없습니다. <서브스턴스>의 내용이 그렇듯이요. 하지만 이렇게 이미 무뎌져버린, 당연하게 자리잡은 문화가 얼마나 역겨운 것인지 <서브스턴스>는 아주 잔인하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마지막 최종 변환 형태 몬스터엘리자-수가 내뿜는 피는 영화 속 관객들 뿐만 아니라 영화 밖 대중들 모두를 뒤덮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너희도 더러워. 너희도 역겨워. 너희도 방금 마가렛 퀄리 몸매 품평했지? 반성해. 그리고 Love yourself 하도록 해. 라고 울부짖는 것 같았습니다.
'더 나은 나'는 꼭 아름답거나 젊은 모습일 필요는 없습니다. 초인적 감각이 발달했을 수도 있고, 근육량이 엄청나거나 말주변이 뛰어나거나 아인슈타인급 천재일 수도 있죠. 저의 고질적인 목 어깨 통증이 없어지기만 해도 '더 나은 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 또한 '더 나은 나'라는 표현이 영화에 처음 등장할 때, (영화의 시놉시스나 이전 신들로 유추할 수는 있었지만) 자연스럽게 젊고 아름다운 나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도 화장품을 사러 갔고, 마가렛 퀄리도 몸 대역과 cg를 썼다는 사실에 안도하고야 말았습니다. 아름다움을 향한 욕구를 바탕으로 한 산업에 둘러쌓인 사회에서 외모 강박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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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카메라야 그렇다 쳐도, 거울에 비친 몸까지 고깃덩이라 여기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나의 몸을 고기로 여기는 문화가 점점 당연해지는 것 같아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엘리자베스와 수가 서로를 타인처럼 대하듯이요. 현실은, 엘리자베스와 수가 '하나'인 것처럼 나의 마음과 몸은 하나이고, 우리가 눈으로 만나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가치있는 인격체인데 말이죠. 타인을 함부로 평가하는 폭력도 잔인하지만 자신을 겨눈 칼날이 더욱 무서운 것 같습니다. 아닌 줄 알면서도 합리화하며 멈추지 않고, 책임을 전가하면서 자신을 부정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모두 엘리자베스의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겁니다. '더 나은 나'라는 가상의 동물에 사로잡혀 현실을 살아가지 못하는 거죠.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더 나은 나를 위해 잘못된 욕망은 억제되어야 합니다. 기억하세요. 몸은 신체 기관일 뿐.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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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타포와 연출이 기가 막혀서 다시 보고 싶지만 감히 엄두가 안 나는 영화입니다. 정말 잔인하기도 하지만 연출 때문에 영화관을 나서서도 한 동안 속이 울렁거렸는데요, 씁쓸하지만 현실이 그렇습니다. 현실을 직면할 용기를 갖고, 자기 반성 및 분노 표출, 충격 요법 삼아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 외모와 젊음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주인공을 '한물 간' 스타로 설정함으로서 사회에서 잊혀지고 밀려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또한 함께 다룰 수 있었습니다. 주인공의 캐릭터성, 의미심장한 대사 한 줄 한 줄, 뛰어난 메타포가 (조금은 뻔한 플롯에도 불구하고) 칸 영화제 각본상을 안겨준 것 같습니다.
➕ 사람의 몸을 고기화해 팔고 끊임없이 대중의 욕구를 자극해 돈을 버는 미디어의 책임감, 윤리 의식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수많은 영화, 드라마 등이 획일화된 미적 기준, 외모 강박, 과도한 젊음 찬미를 비판하고 있지만, 동시에 미디어 산업 자체의 수익 구조를 생각하면 자의적으로 이 기괴한 문화를 뿌리뽑을 의지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결국은 대중들이 무뎌지기 전에 산업 구조를 바꾸어야 할 텐데요. 가능할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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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위하는 엄마랑 눈 마주치기
vs
자위하다 엄마랑 눈 마주치기
당신의 선택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빡셌던 하루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손에 익은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으로 들어서는데.
"@#$%^&*()@## (대충 야한 소리라는 뜻)"
불을 다 꺼놓은 어두침침한 집 안. 유일한 불빛은 서로 입술을 뜯어버릴 듯 물어뜯는 남녀 한 쌍이 나오는 티비뿐. 그리고 야릇한 불 빛 앞에 앉아 있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엄마였다.
정확히는, 자위하고 있던 엄마.
나의 기척을 느낀 엄마, 돌아보며 나와 눈이 마주쳤다.
"전화 좀 하면 어디가 덧나냐"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엄마의 모습에 어이가 없다. 아무리 철부지 같은 우리 엄마라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옷이라도 좀 입고 떠들어!!!!"
나의 당혹스러움에 개의치 않는 듯 일어나 옷매무새를 다듬는 엄마. 그리고는 평소대로 씩 웃으며 말한다.
"치킨 시킬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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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라면 어떨 것 같나요? 집에 들어왔는데 난생처음 보는, 어쩌면 일평생 볼 일 없을 엄마의 자위 장면을 마주한다면? 그럼 이어서, 제목으로 던진 밸런스 게임에 여러분은 어떤 쪽을 택하실 건가요? 저라면.... (침묵)
위 장면은 드라마 <남남>의 초반 장면입니다. 아주 강렬하죠. 수영과 (소녀시대 그 수영 맞습니다) 전혜진 주연의 드라마인데요. 철부지 엄마와 쿨한 딸의 일상기입니다. 어딘지 모르게 더블 도오라이의 스멜을 풍기는 둘의 일상은 잔잔한 일상이 전혀 아닙니다.
19살에 딸 진희(수영)을 낳은 엄마(은미)는 물리치료사입니다. 프로페셔널한 물리치료사라 단골 할머니들의 원픽이지만 딸에게 나이트를 가자고 하고, 자유연애주의자이며, 29살 딸과 매일 같이 투닥대는 골때리는 캐릭터입니다. 진희가 6살 때는, 해수욕장에서 비키니를 입고 남자들의 플러팅을 즐기곤 했죠. 되려 6살밖에 안 된 꼬맹이가 엄마가 남자들이랑 가버릴까 봐 앉아서 자리를 지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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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진희는 경찰입니다. 드라마 내에서 세상 제일 시크하고 쿨한, 엄마가 남자친구를 거실 소파에서 덮치는 장면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인사하고 나갈 정도의 순도 100% 쿨함을 지닌 캐릭터입니다. 이렇게 할말 다하고 틱틱거려도 속에 있는 말을 다 내뱉는 투명한 캐릭터입니다.
친구 같은 둘은 같이 살면서 그렇게도 투닥댑니다. 애정에 기반한 투닥거림이겠죠. 그런데 이 투닥거림이 정점에 달할 때는, 바로 진희의 아빠가 나타난 시점입니다. 가족 버리고 간 남자가 회개하고 돌아온다, 이런 클리셰 전혀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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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시절, 서로에게 첫눈에 반한 생부 진홍과 은미가 하룻밤을 보냈고, 공부 잘하던 진홍에게 연애하면 죽음뿐이라는 아버지 때문에 진홍은 강제 전학을 당하게 됐고, 그렇게 둘은 생이별을 하게 됐고... 나중에 은미는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됐지만 진홍과 연락할 방법은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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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한참 흐른 뒤 평생 은미를 생각해 왔던 진홍이 은미의 병원을 알게 돼 찾아가고, 둘은 드디어! 다시 만나게 됩니다. 은미의 임신 사실, 그리고 당연히 진희가 있다는 사실을 진홍은 몰랐죠. 헌신적인 진홍에 은미는 진희에게 선언합니다.
"나, 남자친구 생겼어. 아, 근데 그 사람 너 아빠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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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희도 처음에는 팔짝 뛰며 싫어했지만, 진국인 진홍의 모습에 마음을 엽니다. 그런데 참 기묘한게, 진홍과 진희는 피로 이어진 사이임에도 사실상 '남남'입니다. 피만 섞였다고 만나자마자 진한 애정이 피어오르고...하기 쉽지 않죠. 보통 드라마에서 한평생 얼굴 모르고 살던 핏줄을 보면 전율이 오고 눈물이 핑 도는 장면이 많지만, 실상 그럴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가족이 곧 남이고, 남이 곧 가족이라는 이 제목이 참 잘 드러나는 설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진홍은 깍듯이 진희에게 존댓말을 쓰고, 진희도 진홍을 아저씨라 부릅니다.
"진희 씨, 엄마 안에 있어요?" 라고 진홍이 진희에게 물으면,
"아저씨가 엄마 찾는다"라고 진희가 은미에게 전하는 식이죠.
핏줄을 만났다고 천지가 개벽하고 누군가의 세상이 바뀌고 이런 생각이 조~큼은 옛적 생각이란 의식은 모두가 있다손 치더라도, 적나라하게 이렇게 보여주는 드라마 장면은 또 희귀해 귀하게 느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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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남의 정의는 진희 은미 모녀에게도 적용됩니다. 누구보다 친구 같은 모녀. 친구는 곧 남이기에, 어쩌면 남남 같은 둘의 사이. 남남 같은 사이기에 이러한 관계성을 보이지만 필연적인 가족입니다. 그래서인지 둘의 캐릭터가 새롭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친구 사이에서 나이트 좋아하고, 남자 좋아하며 화끈한 성격의 철부지는 그저 한 명의 친구로 여겨지는데요. 이 성격의 소유자가 가족, 가족 중에서도 '엄마'라는 위치에 간다면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것이죠. '딸'이라는 포지션에 있는 캐릭터가 '철부지' 엄마를 보호한다는 설정 역시 그렇기에 이질적으로 느껴집니다. 남남의 포지션에 놓고 본다면 이상할 것 하나 없는데 말이죠.
갑자기 잠시 우회하는 것 같지만, 말 나온 김에 '철부지'란 용어를 잠시 살펴봅시다. 철부지의 사전적 뜻은 '철없어 보이는 어린 아이'인데요, 해석하면 누구보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 아닐까요. 마치 어린 아이처럼요. 그렇다면 이런 점에서 '철부지'가 엄마의 포지션에 가는 것이 이상할 것이 하등 없어 보입니다.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감추지 않는 모습이 어쩌면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일 테니까요.
요즘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이 무엇이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잘 모른다고 합니다. '당신의 취미가 무엇인가요?',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나요?' 같은 입사 지원서에 나올 법한 심플한 질문에도 1초의 망설임 없이 제대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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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이런 은미에게도 물론 몰랐던, 감추고 싶었던 면모가 있습니다. 은미의 철부지 같은 면모는 함께해 줄 수 있는 진희가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평생 곁에 있을 것만 같은 진희가 해외 여행을 혼자 떠난다고 하자 서운함을 훅, 느낍니다. 은미는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진희와 함께 할 때 주로 느껴왔던 것이고, 자신도 모르게 의지하고 있던 한 축이 사라진다는 느낌에 처음 느껴보는 기묘한 소외감이자 서운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맨 마지막 화에서 은미도, 진희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해외로 떠나기로 합니다. '남남'이자, 각각의 개별로요. 서로가 서로에게 강하게 엮인 채로 욕망을 드러내고 표출하는 것은 어쩌면 반쪽 진실일 수도 있겠습니다. 독립적인 자리에서, 가족이지만 남남으로, 남남처럼 지낼 수 있는 진정한 가족이 되어서 온전하게 자신의 욕망을 표출하는 자라야말로 진정한 멋진 인간!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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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이 드라마가 나온 지도 2년...이 됐네요. 김씨네의 손에 꼽는 몇 안 되는 드라마 중 하나랍니다. 감자깡에서 드라마를 쓸 때마다 💎김씨네 도라마 보석함^.^💎에서 하나씩 꺼내고 있는 기분입니다. 꼭 보셨으면 좋겠다... 라는 아주 큰 기대를 건 한마디로 글 마무리하겠습니다 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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