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주차] 중증외상센터, 보통의 가족 해학의 민족 한국인의 히어로 🦸
이거야! 내가 원했던 게 이거잖아!
(유행 지난 밈 죄송합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히어로란 무엇인가요?
제가 슈퍼히어로가 갖춰야 할 조건을 몇 가지 생각해 봤는데요, 우선은 망토입니다. 그냥... 왠지 이미지가 그렇습니다. 두번째는 뭐니뭐니해도 능력이죠. 초인적인 능력, 보기만 해도 멋있다...가 절로 나오는 슈퍼파워! 마지막은 정의감입니다. 사람을 구하겠다는 사명감, 옳은 길로 나아가고자 하는 선한 마음이 있어야 진정한 히어로라 불릴 자격을 얻습니다. 모두가 존경하고 우러러보는, 만인의 영웅이요.
여기 한 남자가 있습니다. 하얀 망토(가운)을 둘렀구요, 능력 하나는 얄미울 정도로 뛰어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를 히어로라고 칭할 수 있겠군요. 이 히어로는 당신이 위급한 순간이면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곳이 북한산 중턱이라고 할지라두요...! 전파가 터지는 전화만 있다면, 한국대학교(실존X) 병원 응급실 번호만 안다면 그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이 사람이 누구냐고요? 넷플릭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의 주인공, 외상외과 의사 백강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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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잉? <중증외상센터>? 그거 의학 드라마 아니었어? 히어로라니;; 의사 찬양 멈춰~ 우우~ 👎👎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우선, 의학 드라마 아닙니다. 판타지 메디컬 드라마 입니다. 네. 판타지요.
작년 전공의 파업 사태로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의 스핀오프 작품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이라는 드라마가 방영 연기된 바 있습니다. <슬의생> 시리즈는 사실 전공의 사태 이전에도 의사 집단을 미화한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선하고 정의로운 인물로 그려졌는데, 현실에서 대두되고 있던 대리 수술, 의료 사고 등 사회적 문제와 상반되는 모습에 거부감을 느낀 시청자들이 많습니다. 이 거부감은 의료 총파업으로 인한 피해가 증폭되며 더욱 심각해졌고, 한국의 스테디 장르인 의학 드라마는 어느 순간부터 자취를 감췄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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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외상센터>는 이 작품은 판타지다, 라고 공표함으로써 이러한 논란의 여지를 정면 돌파했습니다. 정말 비현실적일 정도로 능력이 뛰어나고 이상적인 의사의 모습을 한 백강혁 캐릭터를 통해 현실에 이와 같은 의사가 존재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고 합니다. 판타지라는 장르를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1화의 오프닝은 웬 전쟁터에서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오토바이를 타는 장면으로 시작하구요, 예수 버금가는 치료 능력을 보여줍니다. 먼치킨에 가까울 정도로 백강혁이 수술실에 등장하면 긴장감이 확 풀려버리기도 합니다. 어찌 됐든, 백강혁이 어련히 잘 하겠거니 싶거덩요! 😹
“신이시여, 저만 믿으소서”
- by 백강혁
그래서인지 현실고증문제에 대한 비판이 있기는 하지만, 판타지 드라마가 완벽히 현실적일 수가 있나요? 개연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선 허용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수술 중에 이비인후과 장비 빌리러 가는 데 5분 준다는 건... 우사인 볼트도 힘들겠지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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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에게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존재, 빌런도 있습니다. 이 빌런은 사실 특정한 사람이라기 보다는, 돈💰그자체입니다. 병원장도 기조실장도 모두 돈 때문에 백강혁을 사사건건 방해합니다. 사실 중증외상센터는 과 특성 상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에, 중증외상센터를 세우(려)는 백강혁을 못마땅해하는 거죠. 그래서 환자의 목숨보다는 수익을 우선시하고, 백강혁을 몰아내려 여론전을 펼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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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이러니깐요...
하지만 이런 대자본주의시대에 돈을 벌고 싶어하는 걸로 비난할 수 있을까요? 문제는 이들이 의사라는 겁니다. 사업가도 주식투자자도 아닌 의사요. 외상외과 전공의를 모집하러 간 백강혁에게 한 인턴이 질문합니다.
"외상외과에 가면 뭘 할 수 있죠?"
“사람을 살릴 수 있게 되지. 우리 선생님들 의사가 된 이유 그거 아니었나?”
그래야 할 텐데, 저는 이 장면을 보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4년 3월 기준 초등생들의 장래희망 2위는 의사입니다. 동시에 동아일보의 조사에 따르면, 의대생의 48.4%가 의대 진학 결심에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높은 소득 수준'을 뽑았죠. 복수(2개)응답임을 고려하더라도, 그러니까, 그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 중 대다수가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의사가 되었다는 거라고 할 수 있죠. (사실 백강혁도 엄청난 부자인 설정이지만...) 사람을 살리려고 중증외상센터에 가고자 하는 마취과 의사는 판타지입니다. 다들 피부과나 성형외과에 가고 싶어 하겠죠. 사명감 없이 돈 벌고 싶어 하는 의사가 '당연'한 현실입니다.
이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임은 맞습니다. 직업을 선택할 자유요. 하지만 이런 마음으로 의사가 된 사람들이 과연 백강혁이 될 가능성이 높을까요 혹은 기조실장이 될 가능성이 높을까요? 저는 후자가 압도적이라고 봅니다. 병원장 또한 위급한 백강혁의 아버지를 유일하게 끝까지 맡았던 의사였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세상의 풍파를 겪으며 흑화(?)했다는 설정인데요, 사명감 높은 의사가 흑화할 가능성보다도 돈이 목적인 사람이 병원장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더욱 높을 것 같습니다. 누구나 환자가 될 수 있는데, 병원장이나 기조실장에게 목숨을 맡길 수 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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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생명을 지키기 위해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의료진 덕에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수술실을 지키는 영웅들이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서라도, <중증외상센터>같은 드라마가 더욱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사라는 직업은 돈을 많이 벌고 편하게 사는 직업이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정말 힘든 직업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드라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살리고 싶은 사람만이 병원을 지키고 있다면, 더욱 '살 만한' 세상이 될 것 같습니다. 과학고 출신 1/8이 의대에 진학해 과학 인재 육성에 쓰일 돈이 목적을 잃을 가능성도 줄어들 것이고, 이공계 처우가 개선되어 AI 반도체 산업 기술 경쟁력도 높아질 것입니다. 환자들도 의사들을 더욱 존경하게 될 테고요. 돈이 많아서나 공부를 잘해(ㅆ어)서가 아니라요.
현실은 어둡습니다. 백강혁은 많지 않은데, 빌런의 힘은 더욱 강합니다. 공교롭게도 드라마가 공개된 2월 말, 국내 유일 중증외상센터 수련기관이 단돈 9억이 없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9억이 뉘집 개 이름이냐고요? 사람 목숨 값으론 싸게 쳤다고 생각하는데요. 서울시의 지원으로 당장의 위기는 모면했지만, 안정적이지는 못한 상황입니다. 폐원 위기의 이유는 보건복지부의 예산 삭감입니다. 드라마 속 보건복지부 장관은 백강혁 '편'이었는데... 역시 히어로는 조력자의 날개 없이는 날지 못하는 걸까요. 조력자의 마음을 얻는 것은 히어로의 몫이고, 히어로의 부재로 인한 고통은 환자의 몫입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웃고 감동했는데요, 현실은 그저 씁쓸하기 짝이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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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쏠림 현상에 대한 다양한 기사들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생각할 거리가 정말 많으니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공계 처우 개선이 최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R&D 예산 삭감하고 (의)대학 입시에 유리한 방향으로 교육 정책 고칠 것이 아니라. 돈이 필요하면 강남 부동산 고액세납자부터 터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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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영화 요약 짤.
대사와 나는 모르겠소~st의 애티튜드까지 완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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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이란 무엇인가
(샌델 선생님의 '정의란 무엇인가' 표절 v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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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척'하는 사람들이 참 싫습니다. (갑분 소신발언)
상대가 자랑할 만한 성취에 자랑한다면, 동경과 나름의 질투가 뒤섞인 순도 80%짜리 박수를 보낼 테고, 필터 없이 의견을 표출한다면 저 역시 필터 없이 곧이곧대로 표출하는 바를 들을 테니까요. 그것이 저에 대한 비판이라면 개선점을 찾을 테고, 칭찬이라면 싱글벙글 웃겠죠.
그런데 진실은 가면 뒤에 숨겨둔 채 '척'하는 사람과 대면한다면? 그가 하는 말에 제가 할 수 있는 리액션은 전무할 것 같습니다. 사실 '척'하는 사람이 달갑지 않은 것은 저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이 그럴 테지요. 물론, 이렇게 쓰고 있는 저도 '척'한 적이 수십 번이었을 터라 결코 다를 바 없을 테고요. 그렇다면, 자신들조차 보기 싫어하는 '척'을 왜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걸까요? 자신이 '보통'보다 아래라고 여기는 영역에 대한 능력치를 '보통' 수준으로 보이고 싶어서, 혹은 '보통'인 자신의 능력치를 '보통' 이상으로 올린 채로 타인들의 시선을 마주하고 싶어서이지 않을까요.
이런 '척'을 하는 데에 유용하게 이용되는 수단이 있습니다. 바로 신념이죠. 본심이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뼛속까지 무언가를 새기고 있다는 증표로 여겨지는 신념을 방패막으로 내세워 자신의 '척'을 정당화하는 것이죠. '척'과 신념, 오늘의 영화 <보통의 가족>을 가장 잘 설명하는 두 키워드가 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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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는 두 가족이 등장합니다. 소아과 원장인 재규네 가족과 잘나가는 변호사 재완네 가족입니다. 직업 설정에서부터 보통이라고 부르기는 보통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두 가족을 '보통'으로 칭한 것부터 영화 제목의 의도가 궁금해지기 시작합니다.
재완은 재혼 가정으로 아내가 재완보다 훨씬 어리고, 재완의 딸인 혜윤은 새엄마를 싫어합니다. 재규네는 고등학생 아들 시호가 있고, 치매 걸리신 노모를 재규의 아내 연경이 모시고 삽니다. 재완은 돈이 되는 사건이라면 무엇이든 합니다. 도로에서 시비가 붙었다고 가만히 서 있는 상대방을 슈퍼카로 들이받아 사망하게 한 몹쓸 놈도 돈만 된다면 변호합니다. 집에서는 아내와 딸에게 한없이 다정하고요.
소아과 원장 재규는 자신만의 신념이 중요한 사람입니다. 원칙이 중요하고, 사람들에게 베풀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죠. 그렇기에 노모를 요양병원에 모시자고 하는 재완의 말에 노발대발합니다. 재완을 돈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며 속물 취급 합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노모를 간병하는 아내 연경의 의사는 중요치 않아 보입니다. 요양 병원 이야기를 살며시 꺼내는 연경에 그녀의 말을 못 들은 척 무시해버립니다.
이렇게 정반대인 형제의 자식들은 어떨까요? 재완의 딸 혜윤과 재규의 아들 시호는 남매처럼 친합니다. 남매처럼 친해서 미성년자인 둘이 같이 술도 마시고, 일탈의 길로 빠지는데요. 그러다가 둘이 파티에 갔다가 나오던 길에 노숙자를 때려 죽입니다. 둘의 살인 행각은 전국에 뉴스로 퍼집니다.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시호를 알아본 연경을 시작으로 재완 재규 두 가족이 모두 자식들의 살인에 대해 알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 하나!
여러분은 당신의 가족이 살인을 저질렀다면, 옹호해 줄 것인가요, 아니면 자백토록 할 것인가요?
☝🏻자백시킨다!
너무 당황스러워 손발이 덜덜 떨리는 당신 앞에서, 살인을 저지른 당사자가 절대 고의는 아니었다면서 엉엉 웁니다. 평생 사죄하면서 살겠다고요. 돌아가신 분에 대한 죄책감에서라도, 당사자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자백을 하라고 종용했었다고 해도 엉엉 우는 가족 앞에서 같은 생각을 유지할 수 있으신가요?
✌🏻없던 일로 묻어둔다!
반대 상황도 생각해봅시다. 아무리 그래도... 가족을 감옥에 보낼 수 없다고 생각한 당신. 앞으로 잘 살면 된다는 생각에, 가족의 앞날에 빨간 줄을 그을 수 없다는 생각에 없던 일로 묻어두기로 합니다. 처음 사건을 들었을 때부터 증거를 불태웠고, 자백은 생각지도 않았던 당신. 그런데, 만약 가족 당사자가 이를 당연하게 여긴다면?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감쌀 당신을 알기에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당사자가 행동한다면? 노숙인에 대한 살인을 저질렀지만, 아무일 없었다는 것처럼 해외 유학 계획을 세우고 들떠 있는 가족 당사자의 모습을 본다면, 당신은 그럼에도 같은 생각을 유지할 수 있으신가요?
딱 재완과 재규네 상황인데요. 연경은 아들 시호 사건을 알게 되자마자 증거를 불태웠습니다. 곧바로 알게 된 재규는 절대 묻을 수 없다며 시호에게 자백을 강요합니다. 그러다가 눈물을 펑펑 쏟으며 앞으로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겠다는 시호에 바로 사건을 묻어버리기로 마음을 바꿉니다.
재완네는 반대입니다. 재완은 처음부터 이 사건은 무조건 묻어야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변호사인 아빠를 믿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하는 혜윤의 모습에 재완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낍니다. 노숙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주는 자신에게, 어차피 죽을 사람이었다는 듯 별 반응 없이 자신이 해외 대학에 합격해 유학을 준비해야한다며 기뻐하는 소식만 전하는 딸의 모습에 재완은 얼어붙습니다. 그렇게 재완 역시 재규처럼, 처음과 180도 다른 모습으로 아이들이 자백을 해야한다고 입장을 선회합니다.
속물 같았던 재완, 그리고 대쪽 같이 신념을 지키는 듯했던 재규. 둘은 이제 180도 다릅니다. 자백을 해야한다는 재완,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묻어둬야한다는 재규. 멋들어진 식사 자리에서 두 가족은 첨예하게 의견을 대립합니다. 재완이 설득될 기미가 없어보이자, '옳음'에 대한 신념을 고수하는 듯 보였던 재규는 그날 저녁, 형 재완을 차로 들이받아버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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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다 보고나서 있는 그대로의 욕망을 다 드러내는 재완보다, '척'하는 듯이 보였던 재규의 '신념'이 더 속물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추구하는 모습을 향해 나아가는 방향으로의 신념이라면 모를까, 타인의 시선에 신경쓰고, '보통'보다 더 '좋은'사람이고 싶은, 그렇게 인정받고 싶어보이는 욕구에서 나온 '척'이 그의 마지막 행동에서 폭발하는 걸 보며 기묘한 기분이 들더라구요. '가족을 위해서'라는 모든 가정과 상황을 부술 만큼의 강력한 전제를 논외로 한다면요.
여튼! 이렇듯 모두가 나름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듯하지만, 중요한 순간 앞에서는 다들 '신념'이 쉽게 바뀔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나의 상황에 따라,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의 변모하는 모습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신념'. 그래서 신념이란 참 얄팍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모두의 민낯은 '나의 일'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모르는 것 아닐까요.
여러분이라면 재규와 재완의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셨을 것 같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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