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드 🎥

와~ 별로 노력도 안 하는 것 같더니 되게 잘했네? 천재인가봐!

만약 누군가가 여러분의 과제/프로젝트를 보고 이렇게 평한다면 기분이 어떠실 것 같나요?

MBTI T와 F를 구별하는 질문이라고 하는데, T:F = 48:52인 사람으로서 저는 굳이굳이 '노력도 안 하는 것 같다'는 말을 덧붙이는 싹수 때문에 그 사람과 거리를 둘 것 같습니다. 제가 천재인 이유는 노력을 안 해서가 아니라 뛰어나서니까요! 노력한다고 다 잘하나요 어디? (...)

이렇게 뜬금 없는 질문을 먼저 던진 이유는, <위키드>의 두 주인공의 반응이 서로 상반될 것 같아서입니다. T도 F도 아닌 반응이요! 어릴 때부터 외모로 놀림을 받고 (본인은 그렇지 않은 척 하지만) 주변의 반응을 신경쓰는 엘파바는 "네가 뭔데 날 평가해" 하면서도 관심을 받았다는 사실 그 자체에 남몰래 기뻐할 것 같고,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기존쎄' 글린다는 "고마워! 그런데 내 노력을 폄하하진 마." 하면서 정확히 짚어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조금 결이 다른 밸런스 게임을 해보겠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을 한 숟갈 듬뿍 떠먹기 vs 💩은 안 먹는 대신 전 세계에 먹었다고 소문 나기. 사실 이 두 상황은 각각 글린다와 엘파바가 처한 상황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둘 다 오즈의 마법사와 교수의 만행을 알고 있지만, 글린다는 그 사실을 묵과하고 자신에게 과분한 '착한 마녀'라는 타이틀을 얻은 반면 엘파바는 타고난 마법 실력으로 용감히 맞서 싸웠지만 공공연하게 '사악한 마녀'라는 누명을 썼으니까요.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 만나자마자부터 두 사람은 서로를 죽도록 싫어합니다. 이상할 정도로요. 그간 무수한 놀림(ㅠ)을 받았을 엘파바도 유독 글린다만 싫어하고, 친구들에게 천사라는 소리를 듣는 글린다는 엘파바에게만 노골적으로 혐오를 퍼붓습니다. 그냥 겉으로는 잘해주는 척 해도 될텐데 말이죠. 그래서 이런 자신의 이상한 감정을 노래하는 <What is this feeling?>이라는 넘버도 있습니다.

이 feeling은 아마 결핍에서 비롯된 열등감일겁니다. 서로가 서로의 가장 아픈 구석을 건드리는 존재이기 때문이죠. 글린다는 마법이 꿈 그 자체입니다. 대학교에서도 마법을 전공하고 싶어하고, 입학 전부터 마법봉에 관한 에세이를 쓸 만큼 꿈에 열정적입니다. 하지만 학교에 입학한 첫날부터 마법 수업을 주관하는 모리블 학장님께 거절을 당합니다. 항상 주목받고 인정받았던 글린다는 난생 처음 받아보는 찬밥 신세가 당황스럽기만 합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생전 처음 보는 초록 피부를 가진 애가 나타나 자신은 절대 할 수 없을 마법을 부리더니 학장님의 마법 특별반에 초대되는 겁니다. 자신이 그렇게 원했었던 그 특별반을 말이죠!

엘파바는 자신이 가족들의 불행의 원인이라는 생각에 평생을 고통받아왔습니다. 그토록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스스로를 믿지 못하죠. 늘 죄인처럼 몸을 웅크리고 사람들에게 날을 세우는 엘파바는 사실 글린다의 그 천진난만함이 부럽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내가 잘났지! 당당하게 말하는, 가족의 사랑을 바탕으로 친구들과 왕자에게 서슴없이 다가가는 글린다를 보며 자신의 결핍이 사무치게 와닿았을 겁니다.

지독한 '혐관' 끝, 둘도 없는 친구가 된 글린다는 엘파바의 트리거였던 부분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켜줍니다. 처음으로 손을 맞잡고 춤을 추며 친구가 된 파티 이후, 기숙사에 돌아와 엘파바는 자신의 가정사를 털어놓습니다. 어머니가 자신을 낳고, 다시 임신을 하자 또 초록색 아이가 태어날까 두려워 매일 우유꽃을 씹게 했다구요. 그래서 동생 네사는 예정보다 일찍, 다리가 불편한 채로 태어났고 어머니는 깨어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요. 이 모든 것이 자신 때문이라고 말하는 엘파바에게 글린다는 말합니다.

말하기 힘든 비밀과 진실을 구별하게 해줌으로서 엘파바는 가족에 대한 죄책감, 스스로를 부정하는 마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영화의 끝자락, 경비병을 피해 다락에 숨어든 엘파바는 날아오르기 위해 다시 한 번 마법 주문을 욉니다. 이 때 엘파바를 말리는 글린다의 대사가 있습니다.

그래 네 날개는 어딨니? 엘피, 넌 어쩌면 네가 생각했던 것보다 능력이 없을 수도 있어.

물론 글린다는 오즈의 마법사와 모리블 학장이 너무 무서워서, 혹은 명예가 더 중요해서 엘파바를 종용하기 위해 이렇게 말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대사가 엘파바를 향한 말이 아닌, 글린다 자신이 수없이 되뇌었던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겉으로는 마냥 밝아 보이지만 사실 마법사를 만나러 가는 엘파바를 부러워하면서, 그녀 옆에선 비교적 부족해보이는 자기 자신에게요. 가족도 친구들도 자신을 높이 사지만 엘파바 옆에선 들러리에 가까웠습니다. 평생 그렸던 내 꿈을 나의 친구가 이루는 모습을 웃으며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남들이 준 사랑과 칭찬을 바탕으로 무례한 사람에게도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었지만(첫번째 밸런스 게임 상황처럼요! 제가 만든 거긴 하지만...), 처음 느껴보는 부족함과 결핍에 정작 스스로는 자기확신이 줄어들면서 더욱 혼란스러웠을 것 같습니다. 글린다는 점차 한계에 부딪히는데, 엘파바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멀리 자유롭게 날아갑니다. 글린다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훨훨 날아가는 엘파바의 행복을 빌며 그저 먼발치서 응원할 수밖에요.

그런데 이제 '선한 마녀'라는 타이틀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닿지 못할 꿈과 과장된 현실의 괴리, 나만 알고 있는 나의 '사악함'. 사람들은 내가 순결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날 먹은 💩의 맛이 자꾸 생각나는 기분일까요. 그래서 더욱 궁금합니다. 엘파바와 글린다는 이 극악 난이도의 밸런스 게임에서 어느 쪽을 선택할지요. 본인의 원래 모습을 선택할까요, 혹은 실제론 그러지 못했으니 자신이 바라는 이상에 가까운 쪽을 선택할까요? 실제로 두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꼭 한 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겨우 이딴 걸...

이제 엘파바가 글린다의 결핍을 채워줄 때인 것 같습니다. 아마 파트 2의 내용은 글린다가 자신의 Gravity(중력, 한계)에 도전하면서 두 사람이 함께 성장하는 내용으로 채워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가장 유명한 두 넘버가 이미 다 나와버렸으니 음악적인 면에서는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개인적으로는 새로운 곡이 추가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알라딘> 실사 영화처럼요.), 두 사람의 진정한 고난이 시작된 이후 스토리가 어떻게 흘러갈 지 너무나도 궁금합니다. 분명히 더욱 성장할 두 사람을 다시 보려면 1년이나 기다려야 한다니 🥲 슬프게도 기대가 되네요.

➕ 160분의 러닝타임이 좀 길기는 했습니다... 뮤지컬의 재미 + 영화적 연출까지 너무 많은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3분의 카타르시스가 모든 지루함을 잊게 한다는... 디빠잉 그래비티...

➕ 아리아나 그란데와 그녀의 불륜남을 볼 때마다 기분이 묘해졌지만... 아리아나 글린다가 너무 잘 어울리는 바람에 참... 개인사를 고려했을 땐 이렇게 '잘 먹고 잘 사'는 게 아니꼽긴 하지만 좋은 작품과 역할에 어울리는 배우임은 확실히 파퓰러.

🟰 총평: 음악 영화/눈이 즐거운 판타지 영화/소수자 영화/혐관 성장 서사 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재밌게 볼 영화!💚🩷 검증된 스토리, 검증된 넘버, 검증된 배우, 검증된 제작진... 실패하는 게 오히려 이상함.

-드라마 한줄 요약-

전남친 우도환과 예비 남편 오정세와 함께하는

정자 주인 추적극,

Mr. 플랑크톤 📺

12월, 다시 신년 목표를 세우는 시기가 돌아왔습니다.

연말에 던지기엔 꽤나 예민한 질문일 것 같지만, 용감하게 질문하겠습니다.🙄

다들 신년 목표는 다 이루셨는지요?

일말 이루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여러분들은 방황하셨나요, 아니면 방랑하셨나요?

이룬 것은 성취, 미진한 부분은 방랑이라고 합시다. 성취도 또다른 방랑의 시작점이 될 수 있고, 방랑은 새로운 성취를 위한 길이 될 수 있는 것이니까요. 헤맨 만큼 내 땅이라는 말처럼 본디 인생의 찐멋은 자유로운 방랑에서 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우선 한 해 동안 고생한 우리네를 위해 다 같이 박👏쑤우👏-! 한 번 쳐줍시다🤩

<Mr. 플랑크톤>은 결핍을 품고 사는 세 사람의 인생 방랑기입니다. 냉동 정자가 뒤바뀌는 바람에 남의 '씨'로 잘못 태어나 버림받은 해조 (우도환), '엄마'가 되는 것이 꿈이지만 조기 폐경으로 엄마 되기가 원천 차단된 고아 재미 (이유미), 재미가 새로운 인생을 꿈꾸며 남편으로 택한 종갓집 5대 독자 종손 마마보이 어흥 (오정세). 각자가 지닌 결핍을 추동력 삼아 이들은 방랑합니다. 이들의 여정이 '방황'이 아닌 '방랑'이 될 수 있었던 건, 서로에게 꼭 필요한 단 한사람이 이들 곁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집을 나와 길을 떠돌던 해조는, 자기 말마따나 엄마이자 누나이자 연인인 뽕숙 (이엘)에 의해 거둬집니다. 룸살롱 사장인 뽕숙은 한 겨울에 쓰레기장을 뒤지는 고등학생 해조에게 먹을 것을 내주다 직접 밥벌이를 하라며 룸살롱 허드렛일 자리를 줍니다. 그렇게 큰 해조는 심부름 집을 운영하던 중, 자신이 머릿속에 시한폭탄을 품고 사는 시한부라는 사실을 알게 되죠.🥺

바로 일을 때려치고, 생물학적 아빠를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납니다. 혼자가면 '재미'가 없다며 전 여자친구인 '재미'를 납치해서 말이죠. 진심 미친 발상 (이 시대에 이런 설정이..? 싶었던 부분인데요... 딱 이 진입장벽 하나만 참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여기에 재미의 동의는 없습니다. 엄마가 되고 싶다는 자신에게 경험하지 못한 엄마가 어떻게 될 수 있겠냐며🤬 입으로 비수를 꽂은 전 남자친구가 뭐가 예쁘다고 여정에 동참해줄까요. 심지어 재미는 어흥과 혼례를 올리는 중, 리터럴리 한복을 입고 식을 올리기 위해 대기하던 중이었습니다.🫠

해조는 설명도 없이 그대로 납치해 자신의 여정에 동참 시킵니다. 평생 무서운 엄마 그늘 밑에 살던 어흥은 처음으로 엄마의 뜻을 거스르고 재미를 찾아나서게 되고요. 그렇게 세 사람의 찾고 숨고, 쫓고 쫓기는 여정이 시작됩니다.

뿌리 내린 곳 없이 정처 없이 떠도는 해조와 재미. 해조와 재미가 바랐던 것은 피로 이어진 가족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들의 인생이 마치 이리저리 부유하는 플랑크톤 같다 여겨 반대급부로 가족이란 굴레를 그렇게 간절히 바란 것 아닐까요. 그러니 해조는 시한부 판정을 받자마자 친부를 찾아 나서고, 자기가 사장으로 있던 심부름 집이 심부름 '센터'가 아니고 '집'으로 이름 붙인 것 같습니다. 재미 역시 그렇기에 사랑하지도 않는 종갓집 5대 독자에게 시집 가 정착할 생각을 했던 것이겠지요. 사랑도 없이 목적만을 위해 인생을 결혼에 바치겠다는 재미를 보고 해조는 자신의 방랑에 그녀를 동참시킵니다.

해조는 자신은 인생에 그닥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둘의 여정이 마지막으로 치달을수록, 병세가 악화될수록 삶에 대한 미련이 커집니다. 말로는 뿌리에 뭘 그리 가치를 두냐던 해조, 가족의 틀 아래 엄마가 되는 것을 행복이라 여겼던 재미는 함께 방랑하며 자신이 한 사람에게 행복이 될 수 있음을, 반대로 한 사람이 자기 삶의 행복이 될 수 있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작가 왈, 플랑크톤은 해양 먹이 사슬 중 가장 밑바닥을 차지하는 가장 미천한 존재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스스로 빛을 내어 뿜어내는 산소로 인해 이 거대한 지구 생태계가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 참 놀라웠다고. 그러니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는 없다고.😢

어차피 저희 모두는 플랑크톤, 이리저리 부유하며 이 세상에 잠시 머물러가는 존재들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만족스럽지 못한 한 해라고 할지라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의 행복이 되어주었을 지도, 방랑 순간순간의 목적지가 되어주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샤이닝~🌟 플랑크톤들이여! 빛을 잃지 말고 2025년에도 슈퍼🌈 샤이닝✨ 플랑크톤으로 멋지게 살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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