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주차] 청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소통의 신이 필요해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즘 중화권 원작을 각색한 작품들이 많이 보입니다. JTBC의 <조립식 가족>은 중국 작품 원작, 영화 <청설>은 동명의 대만 작품이 원작인데요. 개인적으로 중화권 작품들의 특징인 청량미 가득한, 푸른끼 한방울 도는 투명한 유리 재질🩵을 참 좋아합니다. 애절함보다는 가족 간의 따스함, 연인 간의 풋풋한 설렘 등을 주로 다뤄서인지 딥하게 빠지기보다 쉽게 빠져들 듯 공감하면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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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두 작품을 모두 보면서 절절하게 느낀 바가 있는데요, 바로 '얘기하고 삽시다!!' 입니다. 얘기가 꼭 말을 의미한다기보다, 속내에 있는 이야기를 느낀 그대로 전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의 힘듦은 나 혼자 감당하겠다는 자세가 되려 상대한테 폭풍 같은 상처를 줄뿐더러, 본인한테도 하등 좋을 것이 하나 없더라는 말입니다. 상대를 배려해서 하는 행위라지만 결론적으로 누구 하나 멀쩡할 수 없는 슬픈 행위라는 거죠. <조립식 가족>에서 피는 안 섞였지만 가족인 세 남매가 서로에게 상처주기 싫어 꽁꽁 아픔을 감추다 서로에게 터놓고 더욱 단한해지는 모습, <청설>에서 역시 자신의 고됨을 전가하기 싫은 여주가 남주를 밀어내다 다시금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면서 느낀 바입니다. 어쩌다보니 두 중화권 작품으로부터 자기반성에 더 가까운..😅 깨달음을 얻은 것만 같습니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청설>이니, 줄거리부터 간단하게 설명하고 이야기를 이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홍경과 노윤서 주연 작품으로 꽤나 입소문 탔던 작품인데요. 간단한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언니인 여름이(노윤서)는 청각장애인 수영 선수인 동생 가을이(김민주)를 돌보며 살아갑니다. 동생 서포트를 위해 여러개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동생 픽업을 위해 수영장에 거의 살다시피 합니다. 남주인 용준(홍경)은 취준생입니다. 부모님의 밥집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지내던 중, 우연하게 여름이를 만난 용준은 홀딱 빠져버립니다. 앞뒤 재지 않는 홍경의 수줍지만 풋풋한 직진으로 여름과 용준의 사이가 특별해져갑니다. 유튜브에 홍경에게 설렌다며 돌아다니는 쇼츠들이 이 홍경의 '부끄럽지만 할 말은 다 하는' 직진 장면이더라구요.
이런 둘은 수어로 소통합니다. 오로지 수어로만 대화를 나누다보니, 장면들에서 오히려 표정에 담기는 배우들에 감정에 집중할 수 있어 더 애틋하고, 몽글하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말과 표정은 다르다고, 무슨 일이 있으면 우리는 상대의 표정부터 살핍니다. 수어로 대화를 나누다보면 항시 상대의 표정을 바라보고 있기에 상대의 속사정도 섬세하고도 빠르게 알아차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용준이가 여름이와 대화할 때처럼요. 여튼, 둘이 감정을 키워오다 가을이에게 큰 사고가 나게 되고, 곁을 지켜주지 못한 것 같다는 죄책감에 여름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용준이에게 모진 말을 내뱉습니다. 이제 찾아오지 말라, 너가 힘들다, 불편하다 뭐 이런 말이죠. 전후사정을 아무 것도 모르는 용준은 상처를 받고 잠시 마음을 접지만, 그러면 영화가 영화가 아니겠죠. 둘은 다시 만나게 되고 해피 엔딩으로 영화가 끝이 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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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아쉬움으로 꼽는 반전 (구체적인 반전은 언급하지 않겠지만...왜 스토리 상 갑툭튀인 반전을 넣는 것인가? 반전이 꼭 필요했던 것인가? 등등..), 전개가 예측 가능한 스토리 라인 등 여러 아쉬운 점을 차치하고, 가장 답답하고도 아쉬웠던 지점은 여름이의 침묵이었습니다. 동생이 화재 사고를 겪고 제일 먼저 용준이에게 못된 말을 쏟아붓고 이별을 고합니다. 용준이의 감정까지 부담하고 싶지 않다는 것은 십분 이해됩니다. 더 이상의 부담을 지고 싶지 않다는 포기의 마음 50%, 부담을 지우고 싶지 않은 마음 50% 였다고 칩시다. 그럼에도 말 한마디면, 사정 설명 한 마디만 있었더라도 본인도 계속 연락해오는 용준에 덜 힘들 터이고, 용준 역시 날벼락 같은 나날을 보내지 않아도 되었겠지요. 결국에는 서로가 상황을 공유하고 잘 지내게 되는데, 왜 항상 이런 스토리에서 역경은 '서로가 솔직하지 못해서' 생기는 역경들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야 전개가 되니까요?!)
사실 여름이라는 캐릭터가 왜, 언제부터, 어떠한 연유에서 동생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게 되는지, 혼자 떠안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는지 등에 대한 개연 설명이 충분히 되었다면 여름이의 입장에 공감하며 말 못할 사정에 대한 납득이 갔을 것 같습니다. 그치만... 무작정 캐릭터는 책임감이 많은 성격이야! 라며 단정짓고 들어가는 서사에서 침묵으로 생기는 역경은 되려 답답함만 안겨줍니다. 그렇기에 캐릭터 개연성이 더욱 탄탄하기만 했다면 사라질 아쉬움이겠지만, 대부분의 일상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갈등 시발점이 '침묵'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되려 영화에서 이 지점이 부각된(?) 덕에 저 역시 '침묵'의 위험성을 인지한 지금 이 생각들을 쓸 수 있는 것이겠지요.
각자의 사정은 모두 특별한 것이고, 분명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개개인마다 모두 다를 것입니다. 그럼에도 각자가 가까운 사람들에게 한폭만큼 솔직해진다면, 서로가 감당해야할 상처는 열폭, 스무폭은 줄어들지 않을까요.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꺼내는 것이 어렵지, 막상 입 밖으로 내놓으면 독이 아닌 약이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홍경 팬으로 정신이 혼미해질 풋풋한 로맨스를 보다가 속이 갑갑~~해졌던.. 설렘과 답답함이 공존한 그런 영화였습니다. 지금까지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극장보다는 나중에 오티티에 올라오면 그때 한번 보시면 어떨지.. 추천 남기고 글 마무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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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식이 소시오패스라면...
혹은 아니라면?
나마저 믿지 못하는 (태어나지도 않은) 나의 자식에 대한 연민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자식이 있다면, 아이가 학교폭력 피해자인 쪽이 나을 것 같으세요, 가해자인 쪽이 나을 것 같으세요?
저라면 전자가 나을 것 같습니다. 마음은 더 아프겠지만, 후자라면 자식을 있는 그대로 믿어주지 못할 것 같거든요.
오늘은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로 리뷰를 열어보려고 합니다. 후우우 ~~~ 재밌겠다 ~~~~ 박수 ~~~~~ 👏
저는 비혼주의자는 아니지만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요, 아이를 갖고 싶지 않다 혹은 갖기 두렵다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덧붙이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주 올바른 교육관과 숙련된 육아 솜씨를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미디어와 외부 환경의 영향이 워낙 큰지라 아이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농후하지 않습니까? (세상이 말세라...) 그렇다고 아이의 방향성을 컨트롤하려 한다면? 오히려 더 엇나갈 수도 있고, 또 의존성이 지나친 사람으로 성장할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성장 과정에서도 이렇게나 변수가 많은데 태어날 때부터 어찌할 수 없는 부분도 분명합니다. 선천적 장애아거나 혹은 정말 만약에 소시오패스나 싸이코패스라면요? 그래서 누군가를 해칠까 걱정된다면요? 교육한다고 억누를 수 있는 걸까요? 만약 저에게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세상을 원망하고 스스로를 미워하고 자식을 두려워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부모에게조차 두려움과 의심을 받으며 자라는 저의 불쌍한 아이는 더더욱 삐뚤어질 가능성이 높겠죠. 그렇게밖에 대할 수 없는 저의 모든 감정에 대한 죄책감도 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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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 모든 생각은 다 부질없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생각보다' 지금 제가 세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괜찮은 사람들인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저의 자식도 제가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어찌저찌 그냥 그런 사람으로 자랄 수도 있습니다. 제가 뭐 엄청난 위인을 키우고 싶은 것도 아니고, 당장 저부터도 결함이 너무 많은 사람이니까요. 사람이 얼마나 악하고 별로일 수 있는지를 알아서 최악을 걱정하는 거겠죠. (제발🥹)
사실 주변 사람들의 결함이 저에게 크게 와닿지 않는 것이기도 합니다. 결국엔 남이니까요. (선긋는 거 아님..) 가족관계보다는 기대도 의지도 신뢰도 덜하기 때문에 어떤 행동도 그러려니 할 수 있는 거죠. 나와 일체화했던 가족이라 신뢰가 깨졌을 때 더욱 크게 실망하고 의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 마음가짐이 제가 육아를 이토록 두려워하는 근본적 원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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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저의 이 모든 걱정을 극으로 옮겨놓았습니다. 초반부는 저의 악몽을 옮겨놓은 것 같달까요? ㅎ.. 경찰인 태수(한석규)는 어릴 때부터 딸 하빈(채원빈)이 소시오패스 기질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심지어 그래서 아들의 죽음에 하빈이 연관되어있다고 의심하죠. 그 의심이 가족 전체의 화합에 영향을 끼쳐 결국 아내와 이혼하고 가족과 거리를 둔 채로 살아왔는데, 아내의 자살로 하빈과 함께 살게 됩니다. 그런데 관할지에서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합니다! 혹시... 내 딸은 아닐까? 딸을 지독히 믿지 못하는 아빠와 그런 아빠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딸의 위태위태한 동거가 시작됩니다.
극 중에는 수많은 부모들이 등장합니다. 각 부모들이 자신의 자식들의 결함 또는 잘못에 대처하는 방식이 모두 다른데 모두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더욱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면서 시청하게 됐습니다.
사실 초반에는 태수가 하빈을 의심하는 것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정황 증거가 충분했을 뿐 아니라 하빈이 너무나도 의심스럽게 행동을 하니까요. 쟤는 왜 저렇게 숨기는 게 많고 심지어 감정조차 드러내지 않지? 진짜 죽인건가?? 아빠가 경찰이라서 숨는건가???? 🤨 태수의 시선을 따라 하빈을 의심했습니다.
조금씩 사건의 실마리가 풀리면서, 오싹하고 의심스러웠던 하빈이가 너무 안쓰럽고 심지어 귀엽게까지 보이는 겁니다. 태수와 저의 두려움이, 편견이 하빈이를 그렇게 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너무 미안하더라구요.😅 "너의 그 확신부터 의심해봐"라는 대사처럼 제 판단과 선입견부터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생각은 비단 부모 자식 관계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극중 후배 경찰들도 자신의 선입견 때문에 잘못된 수사를 진행하기도 하니까요. 어쩌면 저희는 일상 속에서도 아주 가까운 사람들을 배신하며 살아왔을지도 모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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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주변에서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극단적인 상황으로 인한 계기가 없었다면 두 부녀는 어떻게 됐을까요? 평생 서로를 오해한 채 점점 멀어지지 않았을까요. 부모 자식 관계가 가까운 만큼 서로를 잘 안다고 착각하기도 더욱 쉬운 것 같습니다. 가까운 사이라고 해서 속 얘기를 모두 터놓고 지내는 건 아닌데 말이죠. 제 부모님도 저를 모두 알지는 못하듯 사실 서로 모르는 부분이 더욱 많듯이요. 저는 아직 자식의 입장밖에 돼보지 않았지만 부모는 더욱 상대를 포용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힘들지 않을까요? 생각이 이어지다보니 부모님께 더욱 마음을 터놓고 내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또 저도 부모님을 더욱 선입견없이 이해하려 노력해야겠습니다. 이 다짐이 저희 가족끼리 서로를 더 잘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여전히 저는 육아가 두렵습니다. 아이를 올바르게 키우기 좋은 환경이 아니라는 생각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기후, 미디어 문화, 경제 등등...) 하지만 제가 저희 부모님과 마음을 터놓기로 결심했듯 더 많은 사람들과 선입견을 넘어 소통하는 연습을 하다보면 추후에 탄생할지 모르는 저의 자식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자신감이 조금 생겼습니다. 부모와 소통하며 큰 사람은 좋은 사람이 될 확률이 높지 않을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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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빈 역을 맡은 채원빈 배우가 아직 노출이 많지 않았던 배우라 더욱 초반의 서늘하고 낯선 분위기가 와닿았습니다.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 연출의 효과가 빛을 발한다는 사실을 실감했네요!
한석규는 말할 것도 없고, 잔잔한 감정 연기를 소름돋게 잘해서 극의 몰입도를 확 높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더 자주 봤으면 좋겠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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