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 열 명이서 와인을 팔면 일어나는 일🍷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은 어색한, 까마득한 선배와의 점심시간.
-정적이 흐른다. 정적을 깨는 것이야말로 나에게 지워진 막중한 책임 아닐까.
"요즘 애들은 어디서 놀아?"
후배의 도리를 다하기도 전에 선배가 먼저 스몰토크를 시작했다.
꺼내려던 주제를 후딱 삼키고 대답했다.
"을지로 많이 가더라구요. 저희는 그런데, 더 어린 친구들은 잘 모르겠어요. 저도 이제 너무 고학번이라 하하"
너도 벌써 그 나이냐, 깔깔 웃던 선배가 맥주를 마시다가 내뱉는 말로 말했다.
"거기, 내 친구가 하는 와인바 있는데. 십분의 일이라고, 책도 낸 멋진 애야"
돌연 마시고 있던 맥주를 한방울 정도 내뿜었다. 누가 보면 짜고치는 드라마처럼 오글거린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며칠 전에 읽고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지, 생각했던 책이었기 때문이다.
"어! 저 그 책, 제 인생 책인데... 세상 엄청 좁네요. 대박!"
🍷🍷🍷
그렇게 슈퍼 어사였던 선배와 제 사이의 스몰토크 물꼬를 터 준 감사한 책, <십분의 일을 냅니다>를 간단하게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이 책은, 드라마 피디를 하시다가 이렇게 일하다 단명하겠다 생각해 퇴사를 결심하고 와인바를 차린 사장님의 업무 일지 이야기입니다. 비싸고 접근하기 어려운 그런 와인 말고, 누구나 가볍게 접할 수 있는 와인. 그런 와인을 접할 수 있는 와인바를 만들고 싶었다고 합니다. 마치 드라마처럼 다수가 접하고 웃을 수 있는 그런 무언가가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튼, 이 와인바의 특이한 점은 '사장님이 열 명'이라는 점입니다. 공동체 사업 같은 것일까요. 오프라인 공간 창업을 위해서는 자본이 필수지만, 큰 돈을 쉽게 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플러스 알파의 수많은 현실적인 요인들로 많은 사람들이 사장이 되기를 꿈꾸지만,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사장님은 공동 창업을 선택합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들과 비용 및 운영을 십분의 일로 나눠 담당하되, 실질적인 (=가게에 상주하는) 사장은 책을 쓰신 사장님이 맡는 구조인 것이죠. 사장이 되고픈 로망은 채우고, 일과 리스크의 부담을 줄이고. 초보 창업자에게 최고의 선택이지 않을까! 읽으면서 머리를 탁, 무릎을 팍, 쳤답니다. 하고 싶은 것에 앞서서 장애물이 있다면, 그걸 깰 것부터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쪼개 요리 들여다보고 조리 들여다보면 답이 나올 수 있다는 걸 이 창업기를 보면서 많이 느꼈습니다.
이제는 힙지로가 된 을지로에 가게를 차리고, 메뉴를 선정하고, 인테리어를 진행하고. 그 와중에 10명의 사장님들과의 회의 끝에 난투극이 되기도, 겨우 하나의 결론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그 결론은 꽤나 괜찮은 경우가 많습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던데, 사업에서는 역이 성립하기도 하나봅니다. 디자인의 디귿도 모르는 동료 형이지만, 페인트칠을 하던 사장님을 지켜보더니 툭 한마디를 던집니다. "그냥 쭉 칠해보면 어때?" 툭 던진 한마디를 실천에 옮기다보면 꽤나 괜찮은 결과물이 나왔다고 합니다. 두 팔 다 걷은 사공 10명이 달려드는 것이 아니라, 슥 치고, 슥 빠지는 사공 10명의 집단 지성은 가히 성공적일 수 있다는 방증 아닐까요.
여튼 홀로 했다면 매출도 오롯이 혼자만의 것이었겠지만, 매장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손님 컴플레인부터 메뉴 선정까지, 그 모든 것도 혼자 부담해야 했겠죠. 대박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스타그램에서 핫한, '허름한 듯 보이는 입구지만 들어가보면 인스타 사진 각이 다량 나오는' 장소로 입소문 나 지금은 제주도에 게스트하우스까지 운영 중이라고 합니다.
특별한 울림이나 문학적 영감 등이 담긴 것은 아니지만, 옆집 이웃이 사장님이 되는 고군분투기를 같이 지켜보는 느낌이랄까요. 한 세시간 정도면 완독 가능하니, 1. 지금 상태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는 싶지만 망설이는 사람 2. 맛깔나되 곡소리 나는 현실감 넘치는 와인바 창업기가 궁금하신 분 3. 가볍게 뚝딱 읽을 만한, 리프레시 되는 책을 찾는 사람! 에게 추천합니다. 다른 사람의 일상을 엿보는 듯한 에세이를 보고 나면 뭐랄까, 드라마 한편 뚝딱 보고 나온 기분이더라구요! 강한 추천 남기며 글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