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관심 구역은 어디까지인가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 영화는 특히, 영화를 봐야
이해할 수 있는 포인트들이 많아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이게 당최 무슨 소리야..?🙁
하실 수 있다는 점.. 미리 말씀드립니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를 꽤 본 기억이 있습니다. 내용이 내용이라서일까요, 볼 때마다 잊지 못하는 기억으로 남곤 했습니다. 수용소 내에서 군인들에게 끌려가면서도, 숨어있는 아들을 안심시켜주고자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하는 아버지가 나온 <인생은 아름다워>, 철조망 하나를 사이에 두고 친구가 된 독일군의 아들과 수용소의 아이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다룬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까지. 둘다 홀로코스트를 다룬다고 해도, 영화로 보여주는 방식에 차이가 있습니다. 전자는 내부의 이야기를, 후자는 여기서 한발 수용소 외부로 나와 악을 가하는 집단의 이야기를 함께 전달합니다. 수용소 내의 아픔에 집중해 보여주는 방식에서, 엄격히 분리해 다뤘던 악의 가해 집단과 피해자 집단의 연결로 비극성을 확장시킵니다. 독일군의 아들이 수용소에 살던 아이와 함께 수용소 내로 들어가, 가스실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결말이 그것이지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여기서 또 다른 각도로 비극을 다룹니다. 가해자 집단의 지극히도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상만을 보여주며, 일상에 입혀진 벽 하나 건너편에 위치한 수용소의 가스실 소리, 비명 소리, 군인들의 성난 소리 등으로 비극은 상상으로만 느껴지도록 합니다. 다들 알고 있는 일들이며 이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기에 그 상상은 소름끼치는 인지부조화를 일으킵니다. 눈으로 보고 있는 평범한 일상-정원의 꽃을 가꾸고, 물놀이를 하며, 밥을 먹는- 속에서 들리는 소리는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와 수용소 가스실 작동소리입니다.
수용소 바로 옆에 살고 있는 수용소장 루돌프 회스의 가족. 그들은 그저 일상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일상 속에서 그들의 관심 구역과 비관심 구역이 확연하게 나뉩니다. 위에 언급한 평범한 일상, 다시는 자신 앞에 놓인 옷을 입지 못할 어느 유대인의 밍크 코트를 입어보며, 백화점에서 새로운 옷을 입어보듯 거울 앞에서 한껏 자태를 뽐내고, 벽 하나 건너 수용소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가사 노동을 맡기는 것들은 모두 이들에게 관심구역입니다. 매일 마주하는 일상이니까요. 회스 부인은 이러한 일상이 깨지기를 극도로 꺼려하며 남편의 전출 명령에도 자신은 이 아름답고 행복한 집을 떠나기 싫다 재차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비관심 구역은 어디일까요? 말할 필요도 없이 벽 반대편의, 자신과 철저히 분리시킨 집단이 살고 있는 수용소의 일상입니다.
그러나 참 아이러니한 부분은 이 지점입니다. 벽 반대편의 일상에는 관심이 없지만 그들의 일상 속에는 유대인들이 항시 함께합니다. 일상의 가사노동을 담당하니까요. 관심구역 내에 비관심구역이 공존하는데도 어떻게 이들에게 벽 너머의 일상은 끝까지 비관심 구역으로 남을 수 있는걸까요? 악의 평범성처럼 무사유의 결과라고 하기에는, 이들도 어느정도 인지를 하고 있는 듯 합니다. 오랜만에 딸의 집에 놀러온 어머니에게 회스 부인이 저 벽을 최대한 안 보이게 하고 싶어 포도 넝쿨을 심었다고 말하는 것을 본다면요. 그렇기에 더더욱 저는 보며 어떻게 이런 공존이 가능한지 의문이 풀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동진 평론가의 유튜브를 찾아봤는데, 여기서는 '사고의 흐름을 끊은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무시로도, 모른 척으로도, 무사고로도 온전히 설명하기 힘든 만큼 사고의 흐름을 단절시켜버린 결과라고요. 어떻게 이런 사고가 가능한지 이해 불가지만, 가장 납득되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회스 부부의 행동들은 사고 흐름 단절의 결과입니다. 더 이상의 새로운 사고와 흐름이 일상에서 생겨나지 않습니다. 일상이니까요. 그러나 아이들은 다릅니다. 일상 속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은 비이성적인 환경에서 일상을 답습합니다. 형은 동생을 온실 속에 가두더니 입으로 '취-취-'소리를 냅니다. 수용소 안에 사람들을 가두는 것, 가스실의 소리를 흉내내는 것이지요. 이렇듯 단절한다고 모든 것의 흐름이 끊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 흐름은 현재까지도 흐르고 있습니다. 글레이저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바 역시 사건의 당시성이 아닌, 현재까지의 흐름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상과 일상 속의 관심 지역과 비관심 지역은 시간 불문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글레이저의 오스카 수상 소감>
“우리의 모든 선택은 현재의 우릴 반성하고 직면하기 위해 이루어집니다. '그때 그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보라'가 아니라 '우리가 지금 뭘 하는지 보라'. 우리 영화는 비인간화가 최악으로 이어지는 걸 보여줍니다"
그 당시에는 독일인과 유대인, 현재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 외에도, 현재에도 수많은 일상 속의 비관심 지역이 있습니다. 매일 관련 뉴스가 쏟아지지만 이는 일상 속에서 잠시 스쳐지나가는 잠깐일 뿐인 경우가 많으니까요. 저 역시 쏟아지는 이슈들에도 이에 할애하는 잠깐의 순간만이 있었을 뿐, 여전히 제 일상 속에서의 비관심 지역이었던 것 같습니다. 시공간으로 단절된 비관심 구역들이 소멸될 수 있기를 바라며 글 마치겠습니다.
📍여담이지만... 정말이지 머리털 나고 본 영화들 중에서 가장 평화롭게 섬뜩하고 공포스러웠던 영화였습니다. 공포스러울 정도로 충격적인 영화니 (여러 의미로!!) 정말 꼭!! 꼭!! 꼭!! 한번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영화를 보셨다면! 이 영상도 꼭 한번 같이 봐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