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주차] 더 드라마, 굿 닥터 (미드)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 내가 알아야 하는 것
그리고 몰라야 하는 것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군가와 결혼💍을 결심하려면 그 사람을 얼마나 알아야 할까요?
좋아하는 음식, 싫어하는 것, 술버릇, 잠버릇. 어떤 가족과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힘들 때는 어떻게 행동하는지. 생활패턴, 취미, 가족관.
그리고 조금 더 깊게 들어가면, 가장 후회하는 일은 무엇인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있는지, 내가 만나기 전에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결혼을 앞둔 사람이라면 상대에 대해 이 정도는 알아야 할 것 같기도 합니다.💑👥 나와 잘 맞는지, 아니면 맞춰갈 수 있는지, 이 사람과 영원히 함께 하며 가족을 꾸릴 수 있을지. 스스로 다짐하고 각오하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해 제대로 알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 모든 걸 알고도 상대를 지금과 같이 사랑할 수 있을까요?❤️🔥🩵💙🤍💔
|
|
|
<더 드라마>는 결혼을 앞둔 연인 에마와 찰리의 이야기입니다.
로버트 패틴슨과 젠데이아라니.🫢 비주얼부터 완벽한 이 커플은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결혼한 친구 커플과 저녁 식사를 하던 중, 재미 삼아 한 가지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 커플이 결혼 전에 서로 공유했던 주제죠.
"살면서 내가 했던 가장 나쁜 일은?"
처음에는 가볍습니다.
친구를 곤란하게 했던 일, 학창 시절 누군가를 괴롭혔던 일….
그러다 에마의 차례가 오고, 에마는 충격적인 사실을 고백합니다.🤯 아주 끔찍한 일을 계획한 적이 있다구요. 실행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준비했고, 연습했고, 실제로 실행에 옮기기 직전까지 갔습니다.🤨🫤☠️ |
|
|
그 한마디 고백으로 완벽했던 결혼 준비가 완전히 뒤집힙니다. 다른 무엇도 아닌, 찰리가 바뀌었기 때문이죠.
사실 어제까지 사랑했던 에마와 오늘의 에마는 똑같은 사람입니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찰리가 에마에 대해 한가지 사실을 더 알게 됐다는 것 빼고는요.👤
그런데 그 하나 때문에 지금까지 알았던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집니다. 이 사람이 정말 내가 알던 사람인가? 나에게 보여준 모습은 진짜였나? 그리고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해도 괜찮을까? 결혼🤵👰이라는 건 어쩌면 누군가를 가장 많이 알고 싶어 하는 관계인 동시에, 알게 되는 것이 가장 두려운 관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
|
영화를 보면서 저는 '알려지는 것'과 '보여지는 것'은 꽤 다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나를 보여준다는 건 내가 선택한 모습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나의 좋은 점, 조금 부족한 점, 적당히 귀여운 흑역사까지.
하지만 정말 깊숙한 곳까지 알려지는 것은 조금 무섭습니다. 들키는 것과 같죠. 나조차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까지 본 뒤에도 이 사람이 나를 똑같이 바라봐 줄지는 알 수 없으니까요. 에마가 두려워했던 것도 어쩌면 자신의 과거가 알려지는 것보다, 그걸 알게 된 찰리의 눈에 자신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일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 거죠. |
|
|
더 재미있는 건 영화 속 누구도 완벽하게 도덕적이지 않다는 점입니다. 찰리 역시 학창 시절 한 친구를 심하게 괴롭힌 일을 자신의 '가장 나쁜 일'로 이야기하고, 친구들도 꽤 끔찍한 과거를 털어놓습니다. 사실 사회적, 주관적 기준에 따라 어떤 일이 더 나쁘다고 할 수 있는지도 다르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에마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분위기는 달라집니다.
"그건 다르지."
물론, 다르긴 합니다. 잘못에는 분명 정도가 있고, 에마가 계획했던 일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면 묘하게 질문하게 됩니다. 사람은 언제까지 과거의 자신에게 책임을 져야 할까요? 실제로 저지른 잘못과 저지르려고 했던 잘못은 같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타인의 잘못을 판단할 때 정말 같은 기준을 적용하고 있을까요?
(강력스포구간)
찰리는 에마의 과거를 받아들이지 못하면서도 혼란 속에서 직장 동료와 키스합니다.😵💫😵💫 생각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도덕적이지 못한 행동을 실천에 옮긴 거죠. 결국 결혼식에서 에마의 비밀과 찰리의 배신이 모두 한꺼번에 터져버리며, 기다리고 고대하던 결혼식은 난장판이 됩니다. |
|
|
도덕에는 분명 기준이 있지만, 막상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 기준 위에 올라가는 순간 이야기는 훨씬 복잡해집니다. 우리는 때로 나 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관대해지기도, 더 엄격해지기도 하죠. 어느 쪽이 더 좋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 이중잣대를 알아도,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여전히 강력스포구간)
저는 마지막 장면이 다소 낙관적이고 추상적인 결말이긴 했지만, 좋았습니다.
엉망이 된 결혼식이 끝난 뒤, 두 사람은 식당에서 다시 만납니다. 그리고 에마는 처음 만난 사람처럼 찰리에게 말을 겁니다.
이름이 뭐예요?
이 근처에 살아요?
두 사람은 그렇게 다시 처음 만난 사람처럼 인사합니다. 처음 만났을 때의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의 두 사람은 서로의 가장 보고 싶지 않았던 모습까지 알아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장면이 단순히 '다시 시작하자'를 넘어, 어쩌면 진짜 서로를 알 각오와 함께 관계를 만들어가자는 의미로 느껴졌습니다. |
|
|
<더 드라마>는 연인이과 함께 이야기할 거리가 참 많은 영화입니다. 연인에게 모든 과거를 말해야 할까? 말하지 않은 비밀은 거짓말일까?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사람일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가장 싫은 모습을 알게 된 뒤에도 우리는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결혼은 상대를 완벽하게 알아낸 뒤에 하는 약속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몰랐던/모르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 사람과 함께하겠다는 약속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어디까지 알아야 안심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정말 모든 것을 알고도, 사랑할 수 있을까요? 💍 |
|
|
모두가 각자의 반쯤 돌아간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
|
|
미국 산호세 병원의 레지던트 채용 면접 자리.
이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회의적인, 어쩌면 적대적인 시선을 보내던 지원자가 지원 동기를 말하기 시작한다.
비에서 아이스크림 냄새가 나던 날, 토끼가 죽었습니다. 내 눈앞에서. 철에서 탄 냄새가 나던 날, 내 동생이 죽었습니다. 내 눈앞에서.
그들이 죽지 않았다면 어른이 되었을 테고,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사랑하면서 잘 살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죽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더 이상 어른이 되어 보지 못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의사가 되어 돈을 좀 더 번다면 티비도 하나 사고 싶습니다.
|
|
|
그렇게 그는 대다수의 반대 의견을 이내 180도 바꿔놓는다. 정확한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두 손을 마주 잡고 담담하게 말하던 지원자의 눈이 이내 촉촉해진다. 결과는 합격! |
|
|
🥼🥼🥼🥼🥼🥼🥼🥼🥼
드라마 <굿 닥터>의 주인공, 숀 머피의 이야기입니다. 자폐증과 서번트 증후군이 있어 타인과의 사회적 소통을 어려워하는데요.
소통이 숀의 약점이라면, 머릿속으로 그림 그리듯 시뮬레이션을 돌릴 수 있는 능력은 그의 강점입니다. 특정한 무언가를 보면 머릿속에 구조도나 설계도가 자동으로 그려집니다. 한번 본 것은 절대 잊지 않는 기억력 역시 그만의 강점이겠습니다. |
|
|
그래서일까요. 환자의 표면적인 여러 증상을 보면, 이를 조합해 머릿속으로 인체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뒤 내출혈 위치, 종양 여부 등을 파악해 단숨에 해결책을 내놓습니다.
이런 숀은 어릴 적부터 외과 의사를 꿈꿔왔습니다. 어른을 살아보지 못한 어린 생명이 이 세상을 떠나지 않았으면 했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 자신을 이상하다 여긴 아버지는 그의 눈앞에서 숀이 가장 아끼던 애완 토끼를 던져 죽입니다. 그 길로 그는 유일한 자신의 아군 동생과 함께 집을 나옵니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자선 모금을 핑계로 생활비를 조달하고, 버려진 버스를 집 삼아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내 그의 동생 역시 동네 친구들과 숨바꼭질하던 중에 버스에서 추락해 세상을 떠납니다.
홀로 남은 숀은, 토끼가 죽었을 때 찾아갔던 동네 수의사였던 글래스먼 선생과 함께 살게 되는데요. 앞선 면접 자리는, 훗날 산호세 병원의 병원장이 된 글래스먼 선생이 의대를 졸업한 숀에게 자신의 병원에서 면접을 볼 수 있도록 마련해준 자리였습니다. |
|
|
본인의 손끝에 한 사람의 생사여탈권이 달린 외과 의사 직업 특성상, 추가적인 변칙 요소인 장애를 '감안'할 수 있을지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고민합니다.
그를 받아주었지만 여전히 회의심을 거두지 못한 이사회를 비롯해 숀의 레지던트 동기들부터 그의 상사까지, 숀의 남들과는 다른 접근법이 살릴 미래의 생명 수보다는 그의 다름이 남들보다 빈번하게 초래할 것만 같은 비관적 상황에 대해 우선 우려합니다.
실제로 출근길에 마트를 들렀다 강도를 만난 숀은. 가만 손 들라는 강도의 말에 멜트다운이 온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귀를 틀어막는 숀의 움직임에 강도는 주변 사람을 실제로 칼로 찌릅니다. 이렇듯 의식적으로 조절 불가한 상황이 수술 중에 찾아오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요. |
|
|
그러나 숀의 동기들은 숀의 극단적인 양면 중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려고 합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 앞에서 당신은 곧 죽을 것이라고 말하는 숀에게 이들은 '소통'을 가르쳐주고, 모두가 미궁에 빠진 환자 케이스 앞에서는 숀의 직관에 기대기도 합니다.
유독 생명 앞에서 도드라지는 숀의 극단적인 강약점보다 자신들의 강약점 대비가 비교적 흐릿하다고 여길지라도, 자신들 역시 하나씩 감춰둔 아픈 손가락이 있기 때문입니다. 유무의 차이가 아니라 정도의 차이일 테고, 정도는 상황마다 달라질 수 있는 가변적인 것일 테니까요.
정신 질환이 있는 엄마 밑에서 방치된 채 홀로 큰 동료 클레어는, 환자와의 공감 형성에 탁월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객관적으로 상황을 전달해야하는 상황 앞에서는 해야 할 말을 뱉지 못합니다. 이럴 때는 숀의 직접적 화법이 그녀의 부족한 부분을 일면 채워주고요,
세상 잘난 맛에 사는 것처럼 보이는 또 다른 동료 모건은 최고의 자리만을 탐냅니다. 가족 중 유일하게 예술가 기질을 타고나지 못해 평생 자신을 입증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일과 중간중간, 찬물에 손을 담그지 않으면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물리적 한계 앞에서 모건은 결국 서전의 길은 포기합니다.
그럼 숀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떨리는 손으로 인해 수술 집도가 불가능하게 된 모건은 서전을 그만두었습니다.
숀의 남다른 두뇌 회전은 서전이 자문직에서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순전히 미래의 멜트다운 '가능성' 앞에서 숀은 서전을 포기해야 할까요?
어디까지가 물리적 한계이고, 어디까지가 함께를 통해 용인 가능한 범주일까요.
이 경계는 그럼 누가 지을 수 있는 걸까요?
|
|
|
숀과 처음부터 함께하게 된 동료들은, 숀의 다름은 다른 동료들이 백업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팀이니까요. 이들에게는 그의 장애가 서전으로서 결격 사유가 된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새로 부임한 상사는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일말의 가능성도 서전에게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는 검사 결과를 분석하는 병리학 파트로 그를 보냅니다. 수술에는 참여할 수 없고 자문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런 처우가 부당하다고 느낀 숀은 상사를 찾아갔지만, 다시 서전으로 복귀 시켜줄 수 없다는 그의 말에 숀은 패닉합니다. 상사의 말은 듣지 않은 채 "I am a surgeon!" 만 계속 되풀이 합니다. 상사는 이런 본인의 모습이, 결국 숀은 서전을 할 수 없다는 자신의 생각을 공고히 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약간의 스포를 곁들이자면, 결국 숀은 다시 서전으로 컴백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반대했던 상사는 해고를 감수하면서까지 숀은 서전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합니다.
여러분은 숀의 동료들과 비슷한 생각인가요, 아니면 상사와 비슷한 생각인가요? |
|
|
드라마는 무엇이 답이다라고 정의내리지 않습니다. 그게 가능한 영역인지도 사실 모르겠고요.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시즌이 지날수록) 숀은 달라집니다. 명확한 입출력 값으로 이제는 '눈치'와 '하얀 거짓말'을 출력할 수 있게 됩니다.
다름은 유무가 아니고 정도의 차이라면, 모두의 세상은 각자의 상황 속에서 조금씩 돌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세상이 270도 돌아가 있다면 다른 누군가는 73도가, 또 다른 누군가는 355도가 돌아가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거겠지요.
각자의 돌아간 정도가 어떤 영역에서는 강점으로, 어떤 영역에서는 미스로 여겨집니다. 그럼에도 타고난 각도에 순응해 살아가야하는가, 아니면 둥근 세상처럼 각도 역시 어찌저찌 돌려가다보면 원하는 각도에 맞춰질 수 있는 것인가. 세상 모두가 품고 있는 생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
|
|
제게 <굿 닥터>는 장애를 가진 천재가 평균적인 각도에 맞춰가는 모습을 담았다기 보다, 자신의 순수 각도가 가장 명확하게 대비될 수 있는 영역에서 어떻게 자신의 세상을 돌려가는지에 대해 보여준 작품인 것 같습니다.
생명을 다루기에 가장 보수적이면서도 실낱같은 희망에도 크나큰 낙관을 품게 되는 영역에서, 보수적인 부분과 크게 마찰을 일으키되 낙관에 딱 들어맞는 천재성의 조화 사이에서 한 개인이 자기 세상을 돌려가는 과정을 보여준 것 같았거든요.
어쩌다보니 (?) 밥도 안 먹고 새벽 내내 정주행하느라 시즌 6까지.. 다 보게 된 작품인데요. 후반으로 갈수록 에피소드 갈아끼우기의 느낌이 강해져서 아쉬웠지만, 시즌2까지는 정말이지 '기준'에 대해 많은 생각을 꼬리물게 하는 작품입니다.
현 시점의 자신의 세계가 계속 자신과 마찰하는 것 같다면, 혹은 아무런 마찰 없이 지루에 가까운 무중력 상태라면, 그리고 이 상태가 그닥 달갑지 않다면, 여러분도 요리조리 자신을 돌려보며 맞는 세계를 찾아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꼭 맞는 세계를 찾게 될지, 아니면 여러분의 각도에 변주가 생길지 아무도 모를 일이니까요. 어쩌면 요리조리 현 세계 내에서 돌리다가 지금의 상황이 사랑스럽게 여겨질지도 모르지요.
여하간 각자 이래저래 돌아간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화이팅을 외치면서, 한번 보시길 권하며 이만 물러나겠습니다ㅎㅎ |
|
|
배우 주원 주연의 KBS <굿 닥터>를 리메이크한 것이 미국 <굿 닥터>!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