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주차] 주토피아 2,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디즈니가 바라보는 세상,
디즈니가 공존을 말하는 방법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려 9년 만의 귀환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심장이 뛰었습니다. 디즈니가 지향하는 PC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주토피아>에서 이번엔 어떤 사건이 벌어질까, 하구요. 픽사, 디즈니 작품들은 단순 애니메이션이라고 하기엔 깊이 있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월-E>, <소울>, <업>처럼 말이죠. <주토피아>는 토끼 경찰 주디와 여우 사기꾼 닉의 여정을 통해 편견과 차별, 그리고 공존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풀어냈습니다. 아이들보단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에 가깝죠. 포스터 귀퉁이 하나하나 디테일로 가득 찬 세계관과 매력적인 캐릭터, 직관적이지만 깊은 메시지가 더해져 수많은 팬덤을 끌어모아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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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사랑하게 만들어놓고 9년 씩이나 곁을 비운 그대...💔 속편은 그간 쌓인 그리움만큼 높아진 기대치를 충족시킬 수 있을까, 약간의 우려도 됐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우 유 씨미>, <위키드> 등 올해 개봉한 시리즈물 속편들이 다들 (저에게는) 낮은 완성도로 실망감을 안겨줬거든요.🥲
하지만!!!!! 우리의 닉주디는 달랐습니다!!! 침몰하는 디즈니를 구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일까요, 비록 스케일 자체는 생각만큼 크지 않았지만 완성도 있는 빠른 전개, 풍부한 사운드와 화면... 개인적으로는 이미 완성됐다고 생각한 관계에 집중하고 있는 내용이라 좋았습니다. 특히 전편의 플롯과 기발한 캐릭터를 최대한 안고 간 점에서 더욱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도넛과 가젤을 좋아하는 치타 클로하우저, 주토피아 큰 손 미스터 빅 등 전편에서 등장한 많은 동물들이 작게든 크게든 역할을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전편에서 주디와 닉이 파트너가 된 후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서 영화가 시작하거든요. 9년 동안 나만 늙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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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역사상 최고의 파트너가 될거야!
이 야심찬 포부와는 달리, DNA(!)부터 다른 이들의 성향은 조금씩 삐걱대면서 마찰을 빚습니다. 관계의 마찰은 일에서의 마찰로 이어지고, 결국 닉주디는 서장 보고의 눈 밖에 나며 일주일 만에 영웅에서 골칫거리가 되죠. 파트너십 단체 상담에까지 강제 참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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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 있는 자세, 복장부터 너무 다른 동물이죠?
전편에서는 이들이 공통점을 찾아가며 친밀해졌다면, 이번에는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관계를 다져나가는 과정을 그립니다.
그리고 이들의 관계는, 전편에서도 그랬듯, 주토피아 전반,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스크린 밖의 이 세상의 수많은 관계들과 똑 닮아 있습니다. 갈등과 배척이 만연한 대 혐오의 시대에, 주디가 꿈꾸는 '더 나은 세상', 닉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한 둘의 '관계'가 녹아들었으면 하는 메시지가 너무나도 잘 와닿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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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웠던 부분도 없진 않습니다. 제가 <주토피아>를 애정했던 가장 큰 이유는, 앞서 말씀드렸듯 현실과 매우 닮은 가상의 세계관을 만들어냄으로써 다소 무서운 주제도 직관적이고 가볍게 던졌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이 세계관을 생각하고 창조해낸 제작진은 디즈니가 직면한 가장 큰 이슈를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낸 천재라고까지 생각했습니다. 지나친 PC주의에 대한 호불호/논란에 대한 걱정 없이, 은유와 다각화를 극대화할 수 있는 만큼 주토피아 세계관에선 어떤 내용도 다룰 수 있을 테니까요! 😮
그래서 이번 <주토피아 2>에서 세계관이 확장되며 새로운 캐릭터&동물 종이 등장한다는 소식에 이번에는 또 어떤 내용을 다룰까 그 메시지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표유류만 있는 줄 알았던 주토피아에 파충류의 등장이라?! 재밌어지겠는걸 현 미국의 뜨거운 감자인 이민자 이슈를 다룰 수도 있겠다 생각했죠.
하지만 이번 <주토피아 2>는 굳이 새로운 주제나 메시지를 던지기보단 (약간의 스포입니다..) 전편과 같은 주제인 차별과 편견을 다루는 안전한 방식을 택했습니다. 플롯도 유사한 부분이 있구요. 일부 인디언 원주민을 연상시키는 내용이 있긴 했지만 완전히 적확하진 않죠. 물론 그 자체로 볼 거리가 풍성하고 분명히 재미있는 작품이지만, <주토피아> 세계관의 가능성을 십분 발휘하진 못한 것 같아 아쉽달까요. 꽤 심각하고 무거운 문제에 비해 그것이 해결되는 과정이 헐겁기도 했구요. 더 잘 할 수 있잖아! 를 외치던 교수님이 생각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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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어떻게 보면 전 연령을 아우르는 만큼 정치 이슈와 불필요한 가르침 없이 깔끔하게 잘 만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사실. 이 둘이 아직 결혼을 안 했다네요? 🤷♀️ 이미 쌍둥이 정도 키우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며... 😒 하지만 이 둘의 케미는 여전히 빛나더라구요.✨ 솔직하게는 저는 모든 남녀 관계가 로맨스로 이어지는 작품을 선호하지 않는 편이라... 이 둘의 관계성이 성애적 사랑에 기반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너무나 좋습니다 ㅎㅎ 그것을 넘어선 애정과 신뢰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여전히 귀엽고 여전히 사랑스러운 닉과 주디, 수많은 이스터에그가 있는 주토피아! 대작들이 대거 개봉한 올 겨울, 2025년을 애니메이션의 해로 점찍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좋아할 애니메이션! 아직 상영 중이랍니다 ~! 😁
아! 모든 엔딩 크래딧이 올라간 후 속편을 암시하는 짧은 쿠키 영상이 있으니, 모두 놓치지 마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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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주토피아>는 유명한 OST 맛집임
✚ 또 <주토피아>는 유우명한 더빙 맛집이라는 사실❗️ 이번에 연예인 성우를 많이 활용해 우려의 목소리가 있던데, 아주아주 짧은 장면에만 등장하는 홍보용 캐스팅이구요. 믿고 보는 정재하야와 전해리 성우가 <주토피아> 전 세계 버전 중에서도 손꼽히는 꿀 더빙을 했다고 하니! 정재하야 버전 닉도 보러 가야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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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잘리고, 널 자른 나도 잘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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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에
집도있고
차도있고
다있는데
내가없네
골때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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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3년 전까지만 해도 코딩이 지금의 AI급 인기를 끌었습니다.
코딩 관련 학과가 신설되고, 무슨 무슨 코딩 과정 이수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이제 AI 관련 학과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부르는 게 몸값이라던 개발자들이 AI 밀려 퇴사를 종용받고 있습니다. 한때는 온 세상이 노래를 부르며 모셔가기 바빴던 직종의 서러운 뒷모습을 보게 된 게 고작 3년도 채 되지 않은 새 일어난 일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텔레마케터로, 과거 전화 외판원으로 불렸던 직업이 꽤나 고소득 직종이었다고 합니다. 학원에서 정식으로 배워야 하는 그런 직종이었다고 하는데, 현재와는 사뭇 다릅니다. 현재의 AI 대체처럼 과거에도 이러한 직업 대체는 항시 있어 왔지만, 이제는 그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졌습니다. 현세대를 살고 있음에도 눈 뜨면 변해있는 세상이 근래 들어 좀 무섭기 시작했습니다.
위와 같이 무섭고도 쓸쓸한 기사를 보면서 막방까지 본방사수했던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의 주인공, 김낙수가 생각났습니다.
좋은 대학을 나와 3사 통신사 중 하나인 대기업 ACT에 입사한 김낙수. 영업왕으로 불리며 부장까지 승진하며 서울에 자가로 집도 사고, 명문대 보낸 아들과 아침이면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여주는 아내와 함께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산다고 자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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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적인 모습을 폴폴 풍기며 아내의 된장찌개에 B+ 점수를 매기는 야수의 심장 김낙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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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동기의 자살 기도부터 여러 사건을 연달아 겪은 끝에, 상무 달기는 고사하고 '본사 사무직'에서 쫓겨나 공장 현장 안전 팀장직으로 좌천 당합니다. 그리고 또 여러 사건 끝에, 퇴사하게 됩니다.
여기서 끝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퇴직금을 몽땅 쏟아부은 상가 투자가 사기를 당하고 10억 빚더미에 앉습니다. 퇴사했음에도 자신은 월 1000 월세를 받는 그런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끝까지 보이는 자신으로 인정받고 싶었던, 자존심으로 만들어진 외피 김낙수의 슬픈 선택이 만든 결과였습니다. 공황도 찾아오고, 점점 자라는 김낙수 얼굴의 무성한 수염이 그의 근심 고뇌를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일년도 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김낙수의 세상은 180도 바뀌었습니다. 김낙수의 인생을 살아보지 않았기에 감히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김낙수는 회사에서도 그리고 회사 굴레를 벗어던지고 나서도 그의 선택은 항상 종잇장처럼 팔랑였습니다. 어린 아이처럼 상사의 칭찬만을 기다리며 바쁘게 돌아다니고, 무엇 때문에 그토록 바라는지 이유조차 모르는 상무자리에 가기 위해 매번 닥치는 상황들을 모면하기 바빴습니다. 퇴사 후에는 주변에서 좋다는, 즉 사기꾼이 좋다고 속삭이는 정보에 넘어가 상가 투자를 하는데요. 중심 축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좋아보이는' 선택을 향해서 갈 지자로 춤을 추는 모습은 결국 중심에 자기 자신이 없었기 때문 아니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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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수는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던 모든 '보이는 것'들로부터 강제적으로 놓이고 나서야, 진짜 김낙수를 마주합니다. 저는 김낙수를 보면서, 김낙수는 뭘 좋아할까? 라는 궁금증이 들었고, 퇴사 후에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게 되려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 생각이 어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계 앞에서 김낙수는 위축되지만, 이내 몸은 무거워도 마음은 가벼울 수 있는 삶을 찾습니다. 이것이 무엇인지까지는 스포가 될까 말하기 어렵지만, 그저 형체 없이 부유하는 '좋아 보이는' 것에 목매던 김낙수가 쏟아지는 소낙비에 한낮의 여유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점이 참 근사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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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에 빚 3000만 원 얻은 아들과 10억 빚이 생긴 아버지😦
대리운전 하는 아버지가 걱정돼서 밤새 함께 대리운전을 하는 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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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변하는 세상을 보면서도, 그리고 김낙수를 보면서도 오히려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이 좋다 칭송하는 것들을 따라가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어렵다는 걸 느낍니다. 당연한 거죠, 좋은 거니까 당연히 어렵겠지요. 그럼에도 세상이 천지개벽할 때, 그 '좋다'를 되새기는 주체가 내가 아니라면 누구보다도 빠르게 그 종종걸음이 공허함으로 느껴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좋음을 더 열심히 좇은 자가 더 빠르게 공허함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러니합니다.
그렇다고 드라마에서는 원하는 걸 하라, 라는 이상적인 답을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그럴 수만 있었다면 다들 좋은 것에 그리 목숨을 걸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이상을 좇을 수 없어 현실의 좋음을 좇지만, 이내 이상을 까맣게 잊어버려 현실에서 공허함을 느끼게 되는 현대사회!! 참 이상합니다. 여하간, 이런 이상하디 이상한 현대사회에 뜬구름 잡는 답을 제시하지 않는 드라마였기에 더 와닿았습니다. 내가 하는 행동의 이유를 한 번쯤은 생각해보고, 그 생각의 중심에 나를 놓아보라는 작고도 현실적인 위로가 좋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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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 장르는 블랙 코미디입니다만 (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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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한 김낙수는 ACT 건물 지하에서 근무하기도 하는데요, 부장 시절 함께 일하던 팀 후배들을 지하에서 마주합니다. 부장 시절에는 그리 종종걸음을 쳐도 한번 들어보지 못했던 존경의 소리를, 후배를 지하에서 마주하고서야 처음으로 듣게 됩니다. 가득 쥐고 있을 때는 그렇게 어렵던 것들이 두 손을 비울 때에서야 쉬워졌습니다. 또 다른 아이러니입니다.
생각할 때, 그 생각 속에 자신을 넣어보라. 그리고 내가 있기에 곁에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있기에 내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잊지 말라. 이 당연한 이야기를 오래도록 잊고 산 사람들에게 팔 둘러 건네는 따수운 프리허그 같은 드라마였습니다. 제가 산 인생보다도 오랜 세월을 한 곳에 바친 김낙수와 그의 자라나는 턱수염을 보면서 아부지가 갑자기 보고 싶어서 페이스톡을 걸었답니다.
김낙수 말고도 다른 캐릭터들에 대한 이야기도 한 보따리인데 그러다가는 뉴스레터가 팔만대장경이 될 것 같아 '짠한 김낙수' 이야기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누가 썼는지 모르겠지만 드라마 포스터에 있는 로그라인은 머리털 나고 본 로그라인들 중에 손꼽게 좋았습니다. 여튼, 쌀쌀한 겨울에 12부작 프리허그가 필요하시다면 꼭 한번 보시라 권하고 물러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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